이창용의 '달라진 한국은행' 두고 금융계 엇갈린 시선

2024-09-23

[비즈한국] 기준금리 결정권자에서 싱크탱크로. 이창용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이 연일 금융권의 관심을 모은다. 좋게 말하면 파격, 나쁘게 말하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조용하고 보수적이며 폐쇄적이던 한은이 다양한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 금융권에서는 한국은행의 달라진 모습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치 출마를 위한 수(數)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금리 결정권자에서 싱크탱크까지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발권 은행이다. 하지만 단연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통화신용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것으로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돈의 양이나 금리가 적정한 수준에 머물도록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한국은행의 달라진 모습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시작은 올해 3월 내놓은 돌봄 비용 관련 보고서였다. 고령화와 저출산 같은 우리 사회 고질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간병과 아이 돌봄 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제안한 것. 외국인 노동자 직접 고용 등 최저임금을 비껴갈 방식까지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이 보고서에서 “돌봄서비스 부문의 낮은 생산성을 고려할 때 이 부문에 최저임금을 다소 낮게 적용한다면 경제 전체적으로는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3개월 뒤에는 물가 보고서에서 ‘농산물 물가’를 지적했다. OECD 국가와 비교해 농산물 물가가 유독 높다며 수입 확대를 제안한 것. 당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사과처럼 전체를 수입하지 않을 경우에는 농가를 보호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정책일지 모르지만, 변동성이 굉장히 커질 수 있다”며 “수입의 다양화를 추진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도 했다.

이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한은은) 농업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수입을 많이 한다고 해서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큰 연관성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대학 입시제도라는 가장 예민한 문제까지 언급했다. 아이의 잠재력보다 부모 경제력이나 거주 지역이 서울대 진학을 좌우한다며, 상위권 대학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로 선발할 것을 제안했다. 입시 불평등이 유발하는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집값 상승, 저출산 같은 구조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맞춘 선발이라고 제시한 것. 이창용 총재는 이번에도 직접 나서 “(서울 또는 강남 같은) 특정 지역 출신 학생 수가 입학 정원의 몇 퍼센트 이상 안 되게 이런 식으로만 컨트롤하면 굉장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늘어난 보고서만큼 늘어난 화제성

보수적이고 언론에 정제된 발언만 했던 한국은행이 이처럼 논쟁적인 화두를 던지기 시작한 것은 이창용 총재가 제시한 ‘싱크탱크 역할’에서 비롯됐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의 역할을 통화정책 테두리 안에만 묶어둘 수 없다고 진단하고 저출생과 고령화, 소득 불평등, 교육 격차 등 구조적인 문제 앞에 민감한 정책들도 제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구조개혁을 위해 이 총재가 내세운 ‘시끄러운 한은’으로 거듭나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BOK 이슈노트는 한은(BOK·Bank of Korea)의 조사연구 보고서 중 하나인데, 실제로 이 총재가 취임한 2022년 4월 이후 나온 BOK 이슈노트 보고서는 총 94건으로 이 총재 취임 이전 3년 평균 17건이었던 것이 취임 이후 36건으로 두 배나 늘었다.

주제도 사회 전반으로 넓어졌다. 물가와 고용, 금리, 환율 등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관심사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사회·노동·교육 등 구조개혁이 필요한 부분에서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창용 총재는 한은의 교육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는 심포지엄 현장에서 이 같은 변화에 대해 “한은이 장기적 구조개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기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에 이 문제들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구조적 문제들이 수십 년간 누적되면서 통화정책 같은 단기 거시경제 정책에도 선택을 제액하는 수준이 됐다”고 진단했다.

금융권에서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늘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달라진 모습에 ‘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라며 “제안이 꼭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거시적인 지점에서 금리를 중심으로 부동산, 주식, 물가를 고민하는 게 한국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의 책무를 벗어난 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정치 출마’를 생각한 것은 아니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교육까지 제안을 하는 것을 두고 이 총재가 향후 정치 출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알쓸비법] '네트워크 마케팅' 퇴보의 이유 3가지, 혁신의 방법 2가지

· [유럽스타트업 열전] 독일, 스타트업에 17조 지원하는 'WIN 이니셔티브' 출범

· 한양증권 인수한 KCGI, 노조 반대에 파킹딜 의혹까지 '시끌'

· 지난해 세수오차 56.4조 원 역대 최대치…윤석열 정부 들어 눈덩이

· 이복현 금감원장 '역대급 존재감'이 되레 마이너스?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