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다 끝났다’는 오해 풀기…특조위서 ‘그날의 조각들’ 다시 맞춘다

2024-10-28

참사 2년 만에 닻 올린 특조위

참사 당일 재구성 주요 과제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 인과성,

기관 협업 부재 등도 규명해야

2022년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의 오랜 투쟁과 염원을 담아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지난달 출범했다. 지난 2년 동안 국회와 경찰·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겠다며 조사와 수사를 벌여 재판에 넘긴 주요 책임자에 대한 1심 법원 판단이 나왔지만 특조위 활동은 이제 막 첫발을 뗀 것이다.

특조위 설치를 위한 특별법은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좌절됐다가 지난 5월 여야 합의로 통과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특별법이 최종 통과된 뒤로도 위원 추천과 임명 과정이 지연되면서 참사 2주기를 한 달 앞둔 지난 9월에서야 어렵게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관련 공직자들의 형사 책임을 묻는 데 집중됐다. 형사 재판은 엄격한 증거와 철저한 입증을 거쳐 잘잘못을 가리는 행위다. 재난과 참사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원인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참사는 위법하다고 보기 어려운 조직 내 관행, 비효율적 의사결정 구조 등 여러 요인이 중첩된 결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껏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규명된 원인은 용산경찰서장·용산구청장·서울경찰청장 등 각 기관장 개인의 책임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특조위는 기관장 개인의 책임뿐 아니라 각 조직이 참사 전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고 작동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용산구청 당직실 직원들은 박희영 용산구청장 1심 재판에서 “당직실이 재난안전상황실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당직실은 참사 당일 관계 기관의 질서 통제 요청을 받고서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박 구청장에게 선고된 무죄와 별개로 구청 조직 내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임재 전 용산서장, 김광호 전 서울청장 등 경찰 지휘관 재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드러났다. 재판은 기동대 배치 요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두고 이 전 서장과 김 전 청장이 벌인 공방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어떤 의사결정 구조로 기동대 배치가 무산됐는지, 사고 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지난 2일 특조위에 1호 신청 사건으로 제출한 9개 조사 과제 중에는 “경찰청-서울청-용산경찰서-이태원파출소에 이르는 조직체계에 따른 종합적인 접근과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법원도 재난 사건에 대한 형사 절차의 한계를 인정했다. 지난 17일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서부지법은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 안 된 것으로 보여 아쉬움을 넘어 실망과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관련 기관 책임자에 대한 도의적·정치적·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족과 생존 치료자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가 ‘군중 유체화’ ‘인파 사고 위험 인지 미흡’ 등 참사의 표면적 원인을 찾았다면, 특조위는 그 배경이 된 구조적 원인을 조사한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경찰의 인파 사고 대응에 미친 영향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 이전이 경찰 인력 배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재판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다. 이 전 서장 측은 “대통령실 이전으로 집회·시위 경력 투입이 많아 부담이 컸다”고 말했고, 박성민 전 서울청 정보부장 측도 “대통령실 이전이 없었다면 용산서는 여유 인력이 있어 충분한 경력을 배치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구청·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조직 간 협업이 없었던 이유도 규명해야 할 대상이다. 지난해 1월 활동을 마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각 기관의 보고체계 부실로 상황 전파가 이뤄지지 않아 초동 조치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서부지법도 용산서 관계자 재판에서 “이태원 참사는 각자 자기 업무에서 일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며 “국가, 사회 각 직역의 미미한 듯 보였던 안전의식의 결여가 켜켜이 중첩되면서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부실한 법령, 대규모 집회·시위 등 외부 환경, 실종된 기관 간 협업, 부실한 재난안전 교육 등 국가 기관의 집단적 대응 실패가 이런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었다.

특조위는 국정조사와 검경 수사 과정에서 번번이 뒤로 밀렸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우선순위에 두고 조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회 국정조사 당시 유가족들은 마지막 공청회에 가서야 증언할 기회를 얻었다. 검경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이 배제되긴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재난 피해자 권리보장 포럼에선 “유가족들이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경우에도 수사 과정에서 직접 진술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국정조사 마지막이 아니라 맨 처음부터 피해자 목소리를 들었어야 하는 것 아닌지 내내 의문스러웠다”며 “어떤 사건이든 피해자 의견 진술을 듣는 것이 수사의 기본인데 이태원 참사 수사 때는 단 한 번도 피해자를 불러 진술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진정을 받아 조사를 진행한다. 특조위는 이미 1호와 2호 진정을 유가협과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으로부터 받았다.

참사 2주기를 지나서야 특조위 조사가 본격화하는 만큼 희미해져 가는 생존자·구조자들의 기억을 종합해 참사 당일 재구성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생존자 이주현씨는 지난 26일 2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2년이 지났지만 소극적인 피해자 파악으로 생존자·부상자 중 나오거나 드러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서 “참사 상황에 같이 있던 친구들도 부상자로 분류되지 못한 채 여태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조위가 수동적으로 피해구제 신청인만 조사하는 게 아니라 숨겨진 피해자를 찾아내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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