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주마간산(走馬看山)과 맹교(孟郊)

2025-10-13

이번 사자성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앞 두 글자 ‘주마’는 ‘달리는 말’이다. ‘간산’은 ‘산을 보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질주하는 말 위에서 스쳐가는 산을 구경하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보고 그냥 지나치는 상황에서 자주 사용된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 751~814)가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 ‘과거에 합격한 후(登科後)’의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과거에 합격한 후’는 그가 합격을 확인한 날, 주체하기 어려운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궁색하던 지난 날 무엇 하나 자랑할 것 없었지만, 오늘 아침엔 우쭐하여 생각이 거칠 것이 없었다네. 봄바람에 마음이 들떠 말 타고 질주하며(春風得意馬蹄疾), 하루 종일 수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실컷 둘러보기도 하고 그랬네(一日看盡長安花).’

이 작품 마지막 내용을 4글자로 축약하면 ‘주마간화(走馬看花)’다. 아무래도, 말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순간엔 꽃보다는 산 전체 윤곽이나 경치에 더 눈길이 머문다. 그래서인지, 끝 한 글자가 바뀌었고 차츰 ‘주마간산’으로 굳어졌다. 현재 중국에서는 ‘주마관화(走馬觀花)’, 이렇게 쓴다.

주마간산. 이 4글자는 현재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다. 대략, ‘수박 겉핥기’와 서로 의미가 통한다. 그러나 맹교의 ‘과거에 합격한 후’에선 결코 부정적 의미가 아니었다.

뛰어난 안목을 가진 이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더라도 여유롭게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진짜와 가짜를 바로바로 가려낼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시간이 충분해도 문외한은 대상을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주로 진위(眞僞) 파악에서부터 분주해지기 때문이다.

맹교는 당나라가 융성하던 시기에 빈궁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향적 성격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주로 시 창작에 힘썼다. 중국 5악(五嶽) 가운데 하나인 숭산(嵩山)에서 은거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모친의 적극적 권유에 따라, 그는 40대부터 진지한 자세로 과거에 응시하기 시작한다. 몇 차례 쓴맛을 보기도 했으나, 40대 중반에 당당히 시험에 합격하고 진사(進士)가 됐다. 자(字)는 동야(東野)다.

안타깝게도, 맹교의 관료 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중년이 되어서야 임용됐고, 무엇보다 이미 굳어진 생활 리듬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무보다 시 창작에 더 시간을 쓴다는 이유로 급료가 삭감된 일까지 있었다. 그를 늘 응원해주던 관료 겸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도 이 소문을 접하고는, 가볍게 웃어 넘기는 것 말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신분 차이를 제쳐두고 깊이 사귀는 ‘망형지교(忘形之交)’ 관계였던 한유와의 일화는 꽤 유명하다. 맹교가 남쪽 어느 현(縣)의 경찰서장에 임명돼 수도를 떠날 무렵의 일이다. 한유는 일부러 긴 문장을 하나 적어 건네준다. 침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맹교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무릇 재주를 가진 이가 세상과 불화할 때 빼어난 문장이나 작품이 탄생하는 법인데, 이번엔 과연 그가 어떤 불후의 작품을 써낼까 기대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가운데 으뜸’으로 꼽힐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던 한유는 당시 이미 문화계 유명 인사였다. 일찌감치 진사과에 급제했고, 관료 생활도 대체로 순조로웠다. 그러나 그는 주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맹교를 높이 평가했다.

맹교는 혼자 지낸 시간이 길었다. 젊어서 아내와 사별했고, 자녀들도 단명했다. 가난하여 하루에 한 끼를 챙겨먹지 못한 날도 많았다. ‘차갑다(冷)’, ‘메마르다(枯)’ 등 추위와 빈곤을 떠올리게 하는 어휘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이렇게 평생 가난에 시달렸지만, 그는 잠시도 시작(詩作)을 멈추지 않았다. 향년 63세로 세상을 하직했다.

다행히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작품 약 500편이 수록되어 있고, 맹동야시집(孟東野詩集) 10권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엔 한유의 문장 복고주의(復古主義)에 호응하는 작품도 많다. 맹교는 고풍스러운 분위기 안에, 비주류 삶의 애환이나 고독을 담아내는 데 능했다. 특히 서민들의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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