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의 미국 제련업 진출 추진 진의를 둘러싸고 업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가운데 회사 뒤에서 이 전략을 설계한 숨은 조력자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려아연이 미국 시장에 직진출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호평이 나오는 한편, 회사가 자신의 재무 상태를 흔들어 가면서까지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만 '올인'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어서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고창현 개인 변호사와 조현덕 김앤장 변호사 등은 고려아연의 이번 미국 합작사 설립과 이를 통한 3자 유상증자 등 대부분 작업을 회사 최고경영진들과 함께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과 자본시장 분야에서 국내 최정상급 전문가로 정평이 난 고 변호사는 김앤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다 올 상반기 퇴사한 인물이다.

두 변호사가 재계에 이름을 알린 사건 중 하나로 2020년 벌어진 한진칼(180640) 경영권 분쟁이 꼽힌다. 당시 조원태 한진칼 회장 측은 사모펀드 KCGI와 조현아 전 부사장·반도건설 등 3자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해야 할 처지에 몰려 있었다. 이 때 김앤장 소속이었던 두 변호사가 크게 활약해 한진칼이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3자 배정 유상증자가 합법 판결을 받아냈다. 이를 통해 조 회장은 경영권을 완벽하게 방어해냈으며 회사도 신규 조달한 자금으로 아시아나항공(020560)까지 품는 최고의 스토리를 썼다.
당시 김앤장 측은 한진칼의 어려웠던 경영 상황과 산업은행의 지분 참여 정당성을 재판부에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신주 발행은 단순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니며 아시아나항공 흡수를 통한 규모의 경제·국제 경쟁력 달성이라는 '대의'를 주장하며 재판부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재판부는 "대한항공(003490)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장기화로 영업환경이 급변하면서 여객 수 및 운항 편수가 상당 부분 감축됐다"며 "향후 대한항공의 재무 및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영업활동의 유지를 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또 "산업은행이 현 경영진(조원태 회장 등)의 의사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약정을 한 바는 없다"며 "산업은행을 현 경영진의 우호 주주로 보고 지분율을 계산하더라도, 현 경영진 측의 지분율이 과반수에 이르지는 않으므로 주주연합은 얼마든지 경영권 변동을 도모해 볼 수 있다"면서 3자 배정 유증 추진의 길을 확실히 열어줬다.

이번 고려아연 3자 배정 유증 추진 역시 법률 자문가들이 당시의 판례 등을 토대로 설계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특히 고려아연의 이번 미국 진출 구상에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미국 정부의 확실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등 또다른 '대의'를 만들어 낸 전략이 눈에 띈다는 평가다. 한국 정부도 이에 호응하며 고려아연의 대규모 미국 제련소 투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19일 시작되는 이번 고려아연 3자 배정 유상증자 가처분 심문에서도 이들은 한진칼의 판례 등을 들어 재판부를 설득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미국 제련업 진출이 회사의 중장기 비전 측면에서도 좋은 전략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이들의 논리를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포장지를 한꺼풀 벗겨보면 이번 전략은 최 회장 개인을 돕기 위해 '법 책사'들이 마련한 술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미국 진출이 설령 회사에 좋은 성장 전략이 된다 하더라도 현지 합작사와 사업회사를 따로 만들고 합작사에 고려아연 지분 10% 이상을 헌납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게 반대편의 논리다. 특히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000670)·MBK파트너스 입장에서는 최 회장에 확실한 방어 카드를 선물하기 위한 전략으로 받아 들여질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제련 기술을 미국에 바치는 셈이라는 강도 높은 지적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실제 이번 투자 계약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에 합작사 법인 지분 뿐만 아니라 사업법인 지분 최대 34.5%를 넘겨줄 수 있도록 했다. 전체 투자금 중 8조~9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고려아연이 부담하는데 이익 상당량을 미국 정부에 몰아주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수십년 간 우량한 재무 상태를 지켜왔던 고려아연은 향후 상당한 이자 부담에 짓눌리게 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미국 합작 제련소가 한국의 온산 제련소 생산량의 절반 가량이 될 것이란 관측에 지역 사회 안팎서 불안감도 감지된다. 국내 제련 생산품 수출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국내 일자리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점 등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 회장 측 법률 자문단은 올 초 영풍그룹에 의도적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어 최대주주 측 의결권을 묶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며 "개인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점차 대담한 방식으로 법을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상법 등의 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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