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회계부정·부당합병 의혹'을 둘러싼 사법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재판에 넘겨진 지 4년 10개월여 만이다. 부담을 털어낸 이재용 회장이 '뉴 삼성' 구축을 위한 발걸음을 본격화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그가 어떤 사업에 가장 먼저 손을 뻗을지 관심이 쏠린다.
17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언급했다.
또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일부는 위법하게 수집됐으며, 수집된 물증의 경우에도 재판에서 활용 가능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고법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앞서 1·2심 재판부도 같은 취지로 이재용 회장의 19개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재용 회장 변호인은 "대법원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면서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언급했다.
재계에선 이재용 회장의 다음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죄 판결 이후 어떤 곳에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뉴 삼성'의 청사진 아래 그룹이 사업태세 정비에 한창인 가운데, 총수의 철학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장을 찾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삼성전자를 상징하는 사업이면서도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기술 열세로 한동안 부진을 거듭해온 터라 사기 진작과 사업 점검 차원에서 구성원과 소통하지 않겠냐는 인식이 짙다.
이 회장은 전세계적 공급과잉으로 반도체 부문이 침체에 빠진 2023년초에도 천안과 온양, 화성캠퍼스를 직접 챙겼다. 당시 경영진과 현장을 방문한 그는 차세대 패키징 연구개발 현황, 중장기 사업 전략 등을 진단하고 간담회를 통해 직원들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화성사업장에선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담소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다시 본궤도로 끌어올리고자 만전을 기하고 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이 엔비디아 퀄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하지 못한 데 따른 대응조치로 품질개선에 착수해 발열과 전력 소비 문제를 풀어낸 것으로 파악된다. 이어 브로드컴·AMD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거래를 시작하며 그 성과를 입증했다. 나아가 엔비디아와도 협상을 재개한 것으로 감지되는데, 앞선 예고대로 곧 HBM3E를 공급할 수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다른 한편에선 이 회장이 로봇 사업을 둘러볼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삼성전자가 이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내비쳐왔고 최근 관련 조직과 투자를 확대하는 등 사업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어서다. AI와 자율주행, 모빌리티 등 여러 산업과 접목돼 중장기 성장 여력이 크고,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사업이기라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로봇 사업은 지난 1년 사이 삼성전자가 가장 많은 변화를 준 분야로 꼽힌다. 연초 로봇 전문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약 2675억원을 추가 투자해 자회사로 편입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최대주주(지분율 35%)에 오른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AI(인공지능)·소프트웨어, 배터리 등 그룹의 역량을 모아 지능형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로봇 기술을 제조·물류 등 업무에 이식할 미래로봇추진단도 꾸렸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대형 이벤트도 앞두고 있다. 올 하반기 AI를 장착한 가정용 반려로봇 '볼리'를 출시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다.
따라서 이 회장도 이들 부문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무엇보다 이 회장은 그간 로봇에 다각도로 관심을 쏟았다. 작년 3월엔 수원 사업장을 찾아 사업 트렌드를 공유하고 볼리의 시연을 참관했다. 갤럭시 웨어러블 제품과의 연계 방안과 독거노인을 위한 기능을 고민해달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덧붙여 삼성전자 안팎에선 이 회장의 사내이사 복귀 가능성에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시장의 거듭된 요구에도 검찰의 대법원 상고 등을 의식한 탓인지 실현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무죄가 확정된 만큼 책임 경영 차원에서 이사회 복귀를 고민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이끄는 이찬희 위원장도 직·간접적으로 지배구조 혁신을 위해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쳐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진 이 회장의 첫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삼성전자의 다음 10년을 좌우할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며 "위기 돌파 또는 미래 준비 등에 대한 총수의 견해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