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삼성, 이재용 등기이사 복귀 촉각

2024-10-16

삼성 근원적 경쟁력 상실 산업계 안팎 제기

초일류 기업 도약 위해 조직 전반에 메스 댈 리더십 필요

"이재용 회장, 책임경영 내걸고 등기이사 복귀해야" 목소리

"글로벌 대외 여건 악화 속에서 책임경영 강화와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2022년 10월 이재용 회장 승진은 절박함 속에서 이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삼성전자는 경기 불황 속 반도체 수요가 끊기며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에 놓인 삼성 반도체는 거대 시장인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판단을 고심해야 했다. 보조금을 쥐어줘 가며 반도체 영토 확장을 노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일도 시급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대응 마련도 과제였다.

다각적으로 놓인 과제 속 이 회장은 취임 이후 국내외 사업장과 협력사, 해외 파트너사들을 수시로 오가며 현장을 직접 살피고, 미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등 바쁜 2년을 보냈다. 최근 방문한 삼성전기 필리핀 사업장에서는 AI(인공지능), 로봇,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기회를 선점할 것을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황 회복, 모바일 선전, 디스플레이 호조 등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지난해 6조5000억원이라는 '영업이익 쇼크'를 벗어나 올해 30조원 후반대의 실적 정상화 수순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삼성의 회복 자체는 고무적이나 이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산업계 안팎으로 제기된다. 지난 14일 한국경제인협회 주최로 열린 '반도체 패권 탈환을 위한 한국의 과제' 특별 대담회에서 전직 장관들은 입을 모아 조직 문화 혁신, 본질적 경쟁력 확보 등을 주문했다. 오랜 기간 '1등 기업'에 취한 탓에 삼성 성장의 바탕이었던 도전과 혁신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일 삼성전자가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내놓은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의 반성문도 이같은 상황을 방증한다. 그는 삼성 위기 진단에 따른 책임을 통감하며 "근원적 기술 경쟁력 회복, 미래 준비, 조직문화 재건"을 약속했다. DS부문장이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내놓은 것은 2년 전과 비교해 반도체 상황이 더욱 악화됐음을 보여준다.

AI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 일찌감치 엔비디아-TSMC와 3각 연대를 구성한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엔비디아향 HBM3E 퀄 테스트(품질 검증)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시고 있는 삼성과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메모리 3위 업체 마이크론 마저 엔비디아를 뚫으면서 HBM 시장 내 삼성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TSMC가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유수의 기업 물량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은 연간 조 단위 적자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2·4나노 공정 로드맵 확대·턴키 서비스'로 요약되는 새로운 파운드리 전략을 공개했지만 이미 60% 이상을 장악한 TSMC의 아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같은 위기에 놓인 인텔은 분사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삼성은 그마저도 택하지 않아 해법 마련에 의구심이 쌓이고 있다.

본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래 대비를 위한 먹거리 발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고 세를 불린 노조는 회사를 연일 압박하면서 삼성은 말그대로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이대로라면은 한 순간에 1등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갈등은 날로 첨예화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반도체법(CHIPS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줄줄이 내놓으며 중국의 기술 자립 시도를 총력 저지하고 있고 중국은 이에 질세라 자국 기술력 확보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내달 앞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 반도체 전략을 대폭 손질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다만 삼성이 도전과 혁신 DNA로 여러 난관을 극복해왔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저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작지 않다. 삼성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1997년 IMF 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세계 일류기업 반열에 오른 저력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금융위기 못지않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무기력에 빠진 그룹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과감히 메스를 댈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안을 정확히 판단할 뿐 아니라 실천으로 옮길 과감한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리더가 강력한 권한을 가지려면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 결국 이재용 회장이 책임경영을 내걸고 등기이사로 복귀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신기술 투자, M&A(인수·합병), 지배구조 투명화 등 뉴삼성 기틀을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 위원장은 '2023 연간보고서' 발간사를 통해 삼성에 대해 "컨트롤타워 재건, 최고경영자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그간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와 인재 확보 등에 매진해온데다, 각종 사법 리스크 속에서도 준감위를 출범시키며 각 계열사 권한을 강화하는 등 준법경영, 책임경영을 위해 앞장서온 점을 고려하면 등기이사 복귀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더욱이 올해 초 재판부가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에서 검찰이 주장한 19개 혐의를 모두 물리치고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이 회장이 이사진으로 합류할 명분이 확실해졌다고 진단한다. 향후 신기술 투자, 신사업 발굴 등을 놓고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서 책임있는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물론 항소심 재개로 한동안 이 회장이 재판정을 자주 오가야 하는 만큼 지금 등기이사를 맡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고, 여론의 의혹 제기도 어느 정도 사라진 시점이라야 이사진 합류를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삼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위기라는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는 더 이상 미루기만은 어렵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된다. 현 재판은 상고심까지 갈 가능성이 있고 최종 결론까지는 수 년을 더 기다려야 해 삼성 정상화 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삼성을 그대로 두게 되면 이 회장이 약속한 삼성의 '지배구조 선진화, 성숙한 노사 관계 정착, 초일류 기업'과도 멀어질 수 있다.

삼성의 변화와 쇄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 적어도 삼성이 다시 한번 심기일전할 수 있도록 이재용 회장이 등기이사의 자격으로 '새로운 삼성' 구상안을 그룹 안팎에 전달하는 메시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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