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강조 이 대통령 달라져…사법개혁, 실용과 무슨 관계?

2025-12-12

보수 논객 조갑제 대표

언론인 조갑제는 스스로도 보수라고 말한다. 한때 자신을 탄압했던 박정희를 재평가(『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한 이후 그리들 여겼다. 행보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보수 진영에선 긍정하고 진보 진영에선 부정하는 보수의 이데올로그였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엔 달랐다. 지난 8월 『윤석열 몰락의 기록』을 내는 등 12·3 계엄 이후 누구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대선 전후 두 차례 만나, 긍정적인 인상평을 내놓았다. 보수로부턴 ‘배신자’ 소리를 들었고, 진보로부턴 ‘보수 원로’ 대접을 받았다.

지금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8일 그가 대표로 있는 조갑제닷컴의 서울 세종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등장한 이후 한국 보수가 진영 논리에 빠져 버렸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견제해야 하는데 박수 부대, 팬클럽이 돼 버렸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은 ‘괴물’이 됐다. 절차를 무시하고 맘대로 국정을 운영했다. 대선 승리의 공신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몰아내고 지난해 의대 증원으로 핵심 보수층의 하나인 의사 집단을 이탈하게 했다. 12·3 비상계엄은 군 통수권자가 공화국을 공격한 사건이다. 공격받은 대한민국이 헌법이라는 ‘무기’로 응징해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의 배신자이고 일관되게 보수를 분열시킨 ‘내부 총질러’였다. 한국 현대사의 중심인 청와대를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보는 시각만 해도 좌파적 시각이다.”

한동훈·이준석, 새로운 타입의 정치인들

계엄은 왜 일으켰다고 보나

“아직도 선뜻 납득할 수가 없다. 계획과 실행 과정에서 계산이 없었던 것 같다. 예컨대 금요일에 했으면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빨리 모여서 해제를 요구하기 어려웠을 거다. 또, 계엄이 성공하려면 수 개 사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 연습도 없었다. 그럼 뭘까. 홧김에 저질렀다고 보는 게 사실에 근접할 거라고 본다. 허무하지만 그렇다. 그의 감정적·주술적·망상적·발작적 면모가 한 덩어리로 엮여 있다.”

조 대표는 “계엄을 통해 80년 동안 발전시킨 한국의 민주주의 뿌리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 사회에 계엄보다 나쁜 상처도 남겼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선거가 공정해야 하고, 국민이 이를 믿어야 한다. 대통령이 이런 신뢰 관계를 완전히 깨버렸다. ‘부정선거를 밝히기 위해 군대를 선관위에 보냈다’고 하니까 이전에 부정선거라고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그렇게 믿게 됐다. 이러면서 보수 단체도 국민의힘도 대한민국도 분열해 버렸다. 대한민국 음모론 중에서 6·25 북침론 다음으로 최악의 음모론이다. 국민의힘이 고약한 게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안다. 출전선수들 아닌가. 그런데 민경욱 전 의원을 빼고 부정선거를 믿거나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다가 (부정선거론에 편승한) 컬트당이 됐다. 특검이 왜 이걸 제대로 수사 안 하겠나. 그냥 놔두면 보수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좌파에 도움이 되니까 그런 거다. 보수 세력이 자살한 거다. 치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조 대표는 대선 전후 4월과 7월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새로운 면을 알게 됐다”고 했다. 통상 정치 문법에선 정치인과의 공개 회동은 사실상 ‘지지’로 해석된다.

예민한 시기에 공개적으로 만났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걱정은 안 했나.

“내가 평생 기자를 업으로 삼으면서 여러 정치인과 전·현직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뉴스 소스였는데 왜 안 만나나. 심지어 그쪽에서 보자고 하는데, 기자라면 당연히 만나야 한다. 거기에 이런저런 고려를 한다면 그건 기자가 아니다.”

그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은 없나.

“많다. 원래 좌우에서 다 박수만 받아본 적이 없다. 1980년 광주에 북한 특수부대가 들어온 적 없다고 했을 때도, 발포 명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관하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그렇다고 사실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기자는 절개를 지키는 지사가 아니다. 인간이나 세력이 아닌 사실에만 충성하면 된다. 요즘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때문인데, ‘조갑제 말이 맞는 것 같다’는 반응도 조금씩 늘어나더라.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렇게 될 거다.”

이 대통령은 만나보니 어떤 사람이라고 느꼈나.

“운이 세고, 밝은 성격이다. 대통령직을 즐기는 것 같다. 천성이라고 본다. 실용주의를 많이 강조하더라.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나 정책을 펴겠다고 해서 그걸 기사로 썼다. 다만, 내 판단은 유보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달라지는 사람을 많이 봐서다. 대부분 그랬다.”

이 대통령도 달라졌나.

“역시 달라졌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윤 전 대통령이 모든 의사가 반대하는 의료 개혁을 밀어붙이다가 망했는데 이 대통령도 모든 판사가 반대하는 사법 개혁을 밀어붙이다가 망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원리다. 모든 군인이 반대하는 전쟁을 강행하면 이길 수 있을까. 지금 내란전담특별재판소 설치, 대법관 증원, 터무니없는 법왜곡죄, 검찰 해체를 추진하는 것도 자신의 사법리스크 해소와 안전을 위해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 원칙을 파괴하는 거 아닌가. 실용주의를 한다고 했는데, 국민들은 ‘이게 실용과 무슨 관계지’라는 생각을 할 거다.”

지지율은 큰 하락이 없다.

“대부분 언론에서 비판하는데, 원래 여론이 따라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같은 국제 행사 효과도 있다. 국민의힘이 ‘윤 어게인’과 단절하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다.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실정을 덮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

“전략이 잘못되면 열심히 할수록 상대를 돕게 된다. 전략이 굉장히 중요한데, 한국인들은 대개 전략적 사고에 약하다. 신라가 삼국통일 했을 때를 제외하면 주도적으로 전쟁해본 적이 없어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누구에게 득과 실이 될까’를 판단해야 하는데 대부분 감정이 앞선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그랬고, 지금의 장동혁 지도부의 행보가 그렇다.”

조 대표는 “한동훈 전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이 모여 새판을 짜야 보수의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력 부족한 사회, 한자교육 부활 시급

두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가 뭔가.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행적 때문이다. 그날 뉴스를 보는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비상계엄은 잘못. 국민과 함께 막겠다. 공무원들은 부역하지 마라’는 자막이 연이어 뜨더라. 바로 핸드폰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그걸로 계엄은 실패하고 바로 해제된다고 확신했다. 여당 대표가 반대하는 계엄은 성공할 수가 없어서다. 전광석화 같은 계엄 진압에는 이 대통령이나 민주당보다 한 전 대표가 더 큰 역할을 했다고 나는 본다. 다만, 한 전 대표가 검사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벌인 수사에 대해선 비판을 많이 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잘한 건 인정해주고, 잘못한 건 비판하면 되는 거다. 이준석 대표는 청계천에서 대선 출정식을 할 때 연설을 들었다. 30여분 말하는데, 문장이 틀리지 않고 중복도 없더라. 그건 대단한 능력이다. 그 전에 20대 대선에서도 ‘세대포위론’을 내놓아 적중했다. 보수 정당에서 그런 대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정치인은 이 대표 정도다. 한 전 대표도 대장동 사건에 대한 검찰 항소 기각 등에 대해서 SNS 등을 통해 사실상 혼자 힘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바꿔 놓고 있다. 행동이 빠르고 핵심을 잡아 요약하는 능력이 비상하다. 새로운 타입의 정치인들이다.”

세가 모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 40대, 50대다. 아직 시간이 많다.”

그는 자신을 보수라고 하지만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는 데엔 거부감이 있다. 그는 “보수는 ‘주의’처럼 딱딱하고 절대적인 게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처럼 현실과 사실을 기초로 유연한 접근이다. 하나 더하자면 사실에 기초한 법과 정의로 자유를 지키는 게 보수다”라고 했다.

조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걸 꼭 써달라”며 “한자 교육 부활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글 전용으로 한국인의 집단적인 언어 치매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자가 사라지니 단어가 의미를 잃게 되고, 구사하는 어휘도 대폭 줄어드는 거다.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사고력이 부족한 사회로 가고 있다. 작금의 정치의 질적 하락도 따지고 보면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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