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는 몹시 슬픈 노래다

2025-06-17

요즘은 초딩 저학년도 성인가요를 흥얼거리는 시대이다. 다섯 살 아이가 TV에 나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런 풍경에 나는 한국사회의 천박성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기성세대는 그래도 동요를 부르며 자랐다. 태어나서 처음 배운 노래는 ‘꽃밭에서’였다. 하루 고작 세 번, 신작로에 먼지를 풀풀 날리며 버스가 다니던 시절, 마초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머니는 밤이 이슥해지면 취학 전 어린 삼형제에게 하모니카를 불며 이 노래를 가르쳤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날 때는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래다. 그러나 전쟁에 나가 소식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지독히 슬픈 노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군인 친구 덕에 알았다. 6·25전쟁 중이던 1953년 발표됐다. 예쁘게 핀 꽃과 꽃밭을 만든 자상한 아빠와 딸아이를 상상하던 사람들은 놀라게 된다. 알고 나면 목이 메는 노래다. 6·25전쟁의 시작과 끝이 모두 여름이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나팔꽃도 활짝 피는 계절이다. 아주 단순한 동요, 하지만 전쟁의 슬픔을 형상화한 무거운 노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6·25를 모른 체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전쟁 중에 발생한 국군과 미군의 잘못만 부각되는 야만의 시대다. 소포클레스가 그랬다. 전쟁은 언제나 악한 자보다 선한 사람부터 먼저 죽게 된다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6·25가 가까워져 오면 지금의 장년 세대는 이 노래를 배우고 불렀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작사했다. 6·25가 내일모레, 평화는 결코 힘과 분리될 수 없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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