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톡] 영화 '그을린 사랑'... 종교 전쟁, 뒤틀린 개인의 서사

2025-06-17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립하던 레바논 내전이 배경

쌍둥이 남매에게 남긴 어머니의 유언장이 준 충격

명감독이 된 드니 빌뇌브의 메시지가 담긴 초기작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0년 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을 보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레바논의 현대사를 잠깐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70~1980년대의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시기다. 기독교와 수니파·시아파 이슬람 등 공식 종교만 18개에 달하는 나라의 역사가 온전하기가 힘든 건 자명하다. 끊임없는 내전으로 레바논에서는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15만 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영화는 캐나다에 살던 쌍둥이 남매(시몽과 잔느)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 나왈의 유언장을 받아들면서 시작한다. 어머니는 "관에 넣지 말고 나체로 기도문 없이 묻어 주세요. 세상을 등질 수 있도록 엎어놔 주세요. 비석을 놓지 말고 이름도 새기지 마세요."라는 유언장을 남긴다. 조국 레바논을 떠나 캐나다에서 생을 마감한 나왈은 쌍둥이 남매에게 어딘가 살고 있는 아버지와 또 다른 형제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버지나 형제의 존재조차 몰랐던 수학자 잔느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들고 여전히 폐허처럼 버려진 레바논으로 떠난다. 그곳 어딘가에 느닷없이 등장한 아버지라는 존재와 또 다른 핏줄인 형제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럽다.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떠난 레바논에서 잔느는 경악을 금치 못할 어머니의 과거와 마주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잠시도 숨 돌릴 틈도 없이 숨겨졌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잔느와 시몽은 기독교도인 어머니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그을음'이 있었다는 사실과 조우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잔인한 현실과 마주한다. 감독은 관객들을 엄청난 흡인력으로 영화 속, 아니 레바논의 내전 현장으로 끌고 간다. 성모 마리아의 사진을 붙인 소총으로 무장한 민병대가 민간인 버스를 상대로 처절한 살육극을 벌인다. 폐허가 된 도시의 한복판에서 저격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소년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한다.

이 영화는 '듄' 시리즈,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등을 연출하며 할리우드 거장 반열에 오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초기 걸작이다. 제83회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 후보, 제35회 토론토 영화제 최우수 캐나다 영화상 수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의 찬사 속에 주목받았다. 감독은 끔찍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서사가 어떻게 뒤틀리는지 비정한 영상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원작은 레바논계 캐나다 작가 와이디 무아와드의 연극이다. 원작에서 레바논 내전은 그리스 비극, 특히 외디푸스 왕과 겹쳐져 그려진다.

프랑스어 원제 'Incendies(앵상디)'는 '화염'이라는 뜻이다. 감독은 화염에 휩싸였던 주인공들의 삶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면서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중동은 여전히 화염에 휩싸여 있다. 감독의 바람처럼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했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은 벌써 멈추었어야 했다. 25일 개봉.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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