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그 안에 갇힌 듯합니다. 살인사건 현장의 귀신이 끔찍한 순간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처럼요.”
작가 찬와이는(65)는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을 주요 소재로 다룬 소설 <동생>의 집필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산혁명에 적극 참여했던 그는 2018년 대만으로 이주해 2022년 이 책을 냈다. 소설은 이듬해 대만 금전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국내 번역 출간을 맞아 작가를 17일 서면으로 만났다.
소설은 두 남매를 주인공으로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부터 우산 혁명이 발생한 2014년까지를 다룬다. ‘탄커이’는 1997년 태어난 동생 ‘탄커러’를 보며 “첫눈에 반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동생을 아낀다. 남매는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간다. 2014년 우산 혁명이 벌어지자 탄커러는 시위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누나는 동생을 걱정해 커러의 시위 참가를 말린다.
작가도 실제 우산 혁명에 참여했다. 당시 거리에서 마주친 청년들을 보고 자신의 동생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생>은 그때 구상한 소설이다. 그는 “그들의 열정, 치열함, 정의를 향한 결연함, 천진함, 고집”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당시 시위는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받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행정장관 직접 선거 쟁취’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2014년 12월 15일 시위 79일 만에 종료됐다. 미완의 혁명으로 불리지만 실패라고 볼 순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이들 민주화에 눈을 떴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는 “당시에는 제압당한 듯 보였지만, 이후에도 참가자들의 감정 에너지는 증발하거나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 다녔다. 나는 그것이 2019년의 한층 격렬해진 투쟁을 직접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운동이 멈춘 듯 보일 때에도 그러한 에너지는 계속 흘러 다니면서 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품격과 소양으로 쌓인다”고 말했다.
2019년 홍콩에서는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보내 재판받게 하는 ‘범죄인 송환법’ 추진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졌다. 캐리 람 당시 홍콩 행정장관은 그해 9월 관련 법안 철회를 공식 선언했다. 다만 이듬해 6월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시위에 참여한 민주화 활동가들이 잇따라 체포하면서 홍콩 민주화 열기도 크게 꺾였다.
이 일은 작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찬와이는 우산혁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압박 받자 2018년 대만으로 이주했다. 이후 가족을 보러 몇 번 홍콩을 찾았으나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이후엔 발길을 끊었다. 그는 “가족을 포함해 그사이 적지 않은 친구들도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무거운 소재들을 다루지만 책의 첫 장 소제목이 ‘시트콤 같은 집안 분위기’일 만큼 가볍고 발랄한 문체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다만 후반에 이르러 시위를 누나와 동생이 갈등하고 동생의 중대한 결심이 드러나며 분위기가 전환된다.
홍콩 현대사의 사건들을 꽤 직접적으로 담은 소설이다. 작가는 이 같은 서술에 대해 “모든 창작물을 현실에 대한 각색이라고 본다. 늘 ‘진실 속 허구’와 ‘허구 속 진실’의 관계를 고민한다. 영화는 관객이 진짜라 믿게 만들려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실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영화의 창작 방식은 알게 모르게 제 소설 창작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작가는 영화 <첨밀밀>의 각본 기획에 참여하는 등 홍콩에서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 <퍼플 스톰>, <8인 : 최후의 결사단> 등 영화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그에게 홍콩이란 어떤 곳일까. 찬와이는 “홍콩은 내가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곳이다. 홍콩의 번영과 쇠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홍콩은 운명이 내게 열어준 문, 오직 나만 지나갈 수 있는 문”이라며 “홍콩에서 성장한 모든 젊은이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것은 네 운명의 문이라 너만 지날 수 있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그 안에서 겪는 모든 일도 혼자만 품을 수 있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니 부디 놓지 말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