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만 들어가면 안 나온다…사춘기 아들 홀린 ‘신령님’ 정체

2025-09-01

아이가 본격 사춘기에 진입하면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아이는 폭죽처럼 감정을 터뜨리며 온 집 안을 들었다 놓았다 하죠. 하필 양육자도 갱년기 무렵이라, 감정은 더 크게 요동칩니다. 사춘기를 명랑하고 평온하게 보낼 수는 없는 걸까요?

이은경 작가와 함께하는 에세이 칼럼 ‘옆방에 사춘기가 입주했습니다’ 4회에선 사춘기 감정 기복에 대처하는 법을 다룹니다. 그가 찾은 해법은 ‘달리기’였는데요. 올해로 3년째 달리고 있는 그가 사춘기 자녀를 둔 양육자에게 러닝을 추천하는 이유, 아이와 양육자가 명랑한 일상을 찾은 비결을 확인해 보세요.

🚿욕실 신령님의 마법

하필, 욕실이 하나뿐인 집에서 두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교대로 소중한 욕실을 차지하고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적당히 좀 씻어라, 진짜 언제 나올 거야!!!!”

“어, 나갈게.”

참다 참다 소리를 질렀는데, 예수님보다 평안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온다. 나만 또 끓고 있다.

나오겠다는 대답 이후 10분이 훌쩍 지나갔지만 감감무소식이다. 10분은 20분, 30분이 되었고, 40분이 넘어가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욕실용 시계까지 다이소에서 사다 놓은 건데, 시계 읽기를 다시 가르쳐야 하나.

중학생 시기, 시험을 앞둔 아이의 시간은 줄줄 흐르는 물이나, 힘들게 벌어온 돈만큼이나 아까운 법이다. 그 모든 걸 아까워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라는 점이 사춘기 갈등의 핵심이다.

샤워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달갑지 않은데 욕실은 어느 순간 노래방이 되어버렸다. 잠깐 씻으러 가면서도 스마트폰을 챙겨 들고 가더니 급기야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씻는 시간이니 음악 좀 들을 수 있지. 나도 곤한 어느 저녁 온수에 몸을 담글 때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기도 하니까.

음악만 얌전히 흘러나왔다면 좋았겠지만 음악은 애교였다. 그 노래들을 고래고래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소리를 이겨보겠다는 기세로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거센 물소리와 욕실 특유의 에코 섞인 노래.

알 만한 아이돌은 모두 다녀가셨다. 팝송은 사정이 좀 나았다. 가사를 따라 부를 수가 없으니 그저 멜로디만 흥얼거리다 끝났으니까. 악을 좀 덜 쓴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못 들어주긴 마찬가지다.

저렇게까지 오래 씻다간 피부가 다 벗겨지겠다, 싶을 즈음 복숭아처럼 ‘바알갛게’ 익은 아이가 뿌연 욕실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손발이 자글거린다. 그 옛날, 엄마 따라다니던 동네 목욕탕에서 막 나와 신기해하던 자글거리는 손가락을 지금 다시 보고 있다.

“신령님 잘 계시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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