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이전에 습관

2025-08-31

과학 저술가 스티브 존스가 주창한 ‘느린 예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에 따르면 영감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무르익고, 실현하려면 큰 노력을 요구한다. 피카소의 말과 어쩌면 일맥상통한다. 이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

크라잉넛이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1995년 8월경 홍대 앞 작은 클럽 드럭이 시작이었다. 1996년쯤 그들의 라이브를 처음 봤던 때를 잊지 못한다. 진짜 못했다. 어쩌면 펑크다웠다고 할까. 그런데 계속 기억에 남았다. 좌충우돌하는 에너지에서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들의 역사가 30년 동안 이어질 줄은 몰랐다.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 누구도 그들이 세대를 뛰어넘는 록 찬가를 내놓고, 장수 밴드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을 단련시킨 건 8할이 연습이었다. 정확히 말해 무대였다. 그 어떤 밴드보다 많은 라이브를 소화하면서 크라잉넛은 자신을 변화시켰다. 체질 자체를 바꿨다.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는 그 순간, 크라잉넛은 더 이상 펑크 밴드가 아니었다. 탁월한 로큰롤 공동체였다. 히트곡도 다발로 내놨다. ‘말달리자’만 있는 게 아니다.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명동콜링’ 등 그들은 한국 인디에서 히트곡 가장 많은 밴드 중 하나다.

크라잉넛에게 로큰롤은 취향을 넘어 습관이었다. 그렇다. 변함없는 습관은 우리의 생활을 앞으로 이끌어주는 주요한 동력이 되어준다. 취향은 때로 좌절하고 무너져도 습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은은하면서도 완강하게 삶에 배어 있는 까닭이다. 여기에서의 취향을 ‘음악을 한다’로, 습관을 ‘음악을 산다’로 치환해도 좋겠다. 딱 하나만 부기한다. 올해는 한국 인디 30주년이기도 하다. 과연, 한국 인디를 상징하는 밴드라고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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