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말 한마디

2025-03-17

안혜주 수필가

손녀딸을 위해 육지와 제주를 오간 지도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들의 결혼과 함께 태어난 아이가 멀리 있는 내 손을 요구한 것이다. 처음에는 여행도 할 겸 잘된 일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아니했다. 양쪽 신경으로 조금만 힘들어도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손녀딸이 크는 모습은 신선했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모습은 마치 우주를 향해 자신의 소리를 저장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런 아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있다 보면 어느덧 몸은 녹초가 돼 있었다. 병원 놀이로 시작해 인형 놀이 공룡 놀이로 인한 장난감들이 질서 없이 나뒹굴 때면 머리까지 빙빙 돌았으니.

감기 기운이 있어 방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같이 놀자고 안달이었다. 적당히 반응해주면 신이 나서 “안녕하세요, 저는 천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끝없이 반복했다. 어린 마음에 누구를 자꾸 도와주고 싶은 건지, 선한 마음은 역시 인간의 본성인 모양이다.

몸은 점점 추워지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따뜻한 방에서 좀 누워볼까 하고 자리를 이동하면 쪼르르 달려와 구급차 사이렌을 울린다.

“삐용삐용! 환자분 어서 구급차에 타세요, 응급실에 가야 합니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구급차에 타는 시늉을 하면 언제 병원에 도착했는지 자신을 또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머리도 아프고 몸도 아프다 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주사도 놓고 약도 지어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춥고 떨리던 몸이 갑자기 따뜻해지는 것이 아닌가. 어린아이의 말에 의지할 만큼 내 몸이 허약해진 것일까.

믿음이 만드는 심리적 현상인 ‘플라세보 효과’가 있다. 가짜 약이지만 진짜 약이라 믿고 먹었을 때, 실제로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긍정적인 믿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심리적 현상이다.

손녀딸의 걱정하지 말라는 한마디에 통증이 멈춘 듯한 느낌 또한 ‘플라세보 효과’가 아니었을까.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을 믿고 따르듯 손녀딸의 말을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경제는 어려워지고, 삶은 팍팍해졌다.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 기사 머리글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우리 차 한잔할까요?”라는 식의 인사는 서로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길가는 나그네의 코트를 벗긴 햇볕처럼 따스한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외로운 코트를 벗게 할 수 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보자.

꽃 피고 열매 맺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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