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2025-11-03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인기작이었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학교 시절 폭력을 당한 뒤 선생님으로부터 오히려 폭행을 당한다. 선생님은 피해자인 동은이 아니라 힘센 부모를 둔 가해자들을 대놓고 편들었다. 이 드라마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학교폭력 문제에 우리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로봇개, 안전대책이냐 노동자 감시냐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산업재해 국가라고도 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산업재해를 근절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법 위에 군림하면서 산업안전을 위한 교섭은 무시한 채 ‘로봇개’를 도입한 회사가 있다. 우리나라 철강업계 1위인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지난 9월6일 원료공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지붕을 받쳐주던 기둥이 기울면서 한쪽으로 지붕과 함께 건물이 넘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고 발생 닷새 뒤, 안전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하청노동자를 사고 현장에 투입해 작업하도록 지시했다. 물론 하청업체를 통해서다. 비정규직지회가 나서서 작업중지를 요청했지만, 현대제철은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고 점검 업무에 하청노동자들을 투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현대제철에서 산업재해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5명이 사망했고, 확인된 사고만 2000건이 넘는다. 이런 위험은 대체로 하청노동자들이 감수한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 중 확인한 바에 따르면, 원청보다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재해율은 항상 높았고, 많게는 10배까지 높기도 했다. 그래서 하청 비정규직지회는 산업안전 문제를 두고 원청인 현대제철에 교섭을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 심지어 법원에서 원청 현대제철이 산업안전 문제 관련해서는 교섭 당사자임을 판결하기도 했지만, 교섭에는 응하지 않고 안전대책이라면서 로봇개를 도입한 것이다. 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한 로봇개는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도구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지난 10월28일에는 회사의 불법파견에 맞서 파업을 벌인 비정규직 지회 간부들에 대한 결심 공판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간부 12명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그런데 그동안 검찰은 회사 측의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거나 아예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행위를 거듭해왔다. 검찰은 현대제철 사용주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입장을 지금껏 바꾸지 않고 있다. 이런 태도는 고용노동부도 마찬가지다. 불법파견임을 확인하고, 현대제철이 직접고용하라고 명령해놓고도 이를 따르지 않은 회사에 대해 한두 번 형식적인 조사만 벌였을 뿐이다.

기업 감싸기 깨야 산업안전 지켜져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전 조합원이 고소장을 작성해서 지난 8월27일 검찰에 현대제철 대표이사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을 집단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마자 이를 노조가 악용한다고 거의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그동안 원청 현대제철의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에 침묵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또 지난 8월14일에는 현대제철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했던 46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한다고 하자 일제히 통 큰 결단이라고 환영하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실상 그보다 더 많은 200억원 손해배상은 철회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환노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용우 의원은 2021년부터 법원의 판결도 무시한 채 교섭을 거부하는 사안에 대해 검찰에 불기소 송치한 문제를 따졌다. 문제의 심각성으로 보아 노동부가 전면적으로 산업안전을 진단하는 현장실사를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마땅한 사안이다. 노동부도, 검찰도, 언론도 재벌과 대기업 봐주기를 중단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짚어야 할 때다. 노동부와 검찰, 언론의 기업 감싸기 관행을 깨야 산업안전도 지켜질 것이다. <더 글로리>의 영향으로 학교폭력에 사회적 관심이 쏠렸다면 이제는 현대제철 문제를 풀어가는 것으로부터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고, 대화와 교섭을 통한 산업평화의 정착으로 가는 계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부당노동행위는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이고 이것을 방치하는 것은 폭력을 조장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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