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듬해인 2014년 8월 14∼18일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을 정도로 한반도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2013년 브라질, 이듬해 3월 요르단·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이어 세 번째 외국 순방지였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교황이기도 했다.
당시 공항에 영접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교황 방한을 계기로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하자 그는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화답했다. 교황은 4박5일 머무는 동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와 전 세계에서 ‘희망과 평화 지킴이’로 수행할 책무가 있다고 당부했었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10월 처음 바티칸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교황청은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북한에도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던 교황은 방북도 추진했었다. 문 전 대통령이 첫 공식 방문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하자 교황은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답했다. 당시 주교황청 한국대사였던 이백만 전 대사에 따르면 교황은 이미 방북 의지를 굳힌 상태였다. 사제가 1명도 없는 북한을 찾았다가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수 있다며 보수세력 사이에선 반대 의견도 꽤 있었는데, 교황은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다가 아니라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며 교황의 방북 추진은 동력을 급격히 상실했다. 북한은 교황 방북이 더는 북미관계 개선에 도움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고, 팬데믹까지 겹쳐 대외관계를 전면 폐쇄했다. 교황은 이후에도 몇 차례 방북 희망 의사를 밝혔고,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과 접촉하기도 했으나 끝내 허사였다. 요즘 북한의 준동에 한반도 긴장지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교황의 선종이 더욱 안타깝다. 냉전의 마지막 상흔인 유일한 분단국에 ‘평화의 사도’가 다시 찾아올 날을 기대해 본다.
황계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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