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방법무사회 추계 대마도 역사 탐방

2024-10-28

 전북지방법무사회(회장 이형구)는 회원들과 함께 지난 10월 25일부터 1박2일간의 일정으로 대마도 역사 탐방을 추진하고 대마도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탐방단은 부산에서 49.5.㎞ 떨어진 대마도를 뱃길로 방문해 첫날에는 신라국사 박제상 순국비 참배를 시작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 17,800명과 왜선 700척의 출발지인 오우라항을 거쳐서 조선통신사 역사관, 금석성내에 있는 덕혜옹주 결홍봉축비 및 백제비구니가 창건한 수선사내의 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에 참배를 했고 조선통신사를 접대하기 위하여 건축한 조선통신사접우노비의 터를 살펴보았다.

다음날에는 조선의 침략의 전초기지역을 하였던 만제키바시(만관교)와 1500년 전에 백제인인 심었던 은행나무살펴 본 후 금년 4월에 재건한 한국전망대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부산에 감탄을 하였으며 모든 회원들은 새삼 가까움을 느끼며 우리땅임을 스스로 인지했다.

또한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학문을 전파한 왕인박사의 현창비에서 마지막 참배를 마치고 우리 땅 대마도의 반환 등에 관하여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1세미나는 역사탐방 안내를 맡은 이형구 본회 회장이자 대한민국 대마도 반환운동본부 의장은 “세종대왕은 왜구들이 고려말부터 당대까지 무려 250여 차례의 아국 도서벽지를 침범하여 백성을 살해하는 등 그 피해가 극심하여 그들의 본거지인 대마도에 1419년 이종무 장군을 보내 대마도를 거점으로 활약하는 왜구들을 토벌하였다. 그 다음해인 1420년에 대마도 8대도주 종정성으로부터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맹서를 받아들이고 도주명칭을 태수로 봉하고 관인과 관직을 하사하여 조선 500년 동안 조선의 땅으로 관리를 하였다는 조선실록과 조선 영토로 표기된 지도 등의 자료가 차고 도 넘친다.”고 하면서 대마도는 1868년 명치유신으로 이유 없이 강탈당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대한민국의 부속도서라고 말했다.

또한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 정부수립 3일 후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하였으나 그 후 어느 대통령도 반환 요구를 한 바 없다.”고 하면서 이제는 국민 모두가 나서서 반환운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제2세미나에서는 참여 회원들의 자유토론의 장을 마렸하였는데 참여 회원 모두가 이런 기회에 대마도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가 되었다고 하면서 대마도 우리 땅을 힘차게 외치기도 했다.

현재 대마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인들을 비롯하여 고려 및 조선의 많은 백성들의 도래지가 전역에 퍼져있다. 일본 전역에서 최고 오래된 1500년된 은행나무는 백제인이 심었고 최익현 선생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는 백제의 법구 라는 비구니가 창건하였다. 또한 최익현 선생님의 초당지가 현존하여 있고,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백제국 왕인박사 현창비, 신라국사 박제상 순국비, 조선국 통신사비, 조선에 조총을 가지고 귀국한 황윤길 현창비 등 셀 수 없는 우리의 역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국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아 항거하다 순창에서 패하고 대마도로 강제 이송되어 아사순국했다. 최익현 초당지는 대마도로 이송되어 최초로 영어의 몸으로 묶인 건물이다. 애국애족 정신이 투철하여 일본간수의 상투 자르는 것을 거부하고 단식을 결행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운명을 달리하셨다.

이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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