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K-푸드 열풍의 역설, 혁신 필요한 ‘식재료 수출’

2024-11-19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부른 ‘아파트(APT.)’가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지금, 뉴욕 맨해튼에서는 미식가들이 ‘뉴요커의 입맛’을 한식에 빼앗겼다. ‘미슐랭 가이드 뉴욕 2023’의 별점 레스토랑 71곳 중 무려 11곳이 한식당이다.

전년 대비 2곳이 추가된 이 수치는 한식이 세계 최고의 미식 도시에서 주류 요리로 인정받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작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음식 순위 4위에 떡볶이가 이름을 올렸으며, 인도네시아 자보드데따벡(JABODETABEK·수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권)에만 적어도 150개 이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60개 이상의 한식당이 있다.

하지만 이런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 열풍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숨어 있다. 해외 한식당이 사용하는 고춧가루의 80%가 중국산이며, 수출되는 김치의 상당수가 해외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푸드 세계화가 정작 한국 농업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식문화-농산물 수출 연계 전략의 시작점은 2013년 ‘와쇼쿠(和食)’의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본격화했다. JA전농(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은 이러한 정부 정책에 발맞춰 수출 전용 생산단지 조성과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특히 엄격한 생산 및 품질 관리 기준을 통해 해외 고급 일식당이 요구하는 규격의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일본 식재료의 활용법을 교육하는 도쿄의 와쇼쿠 조리전문학교는 요리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일본산 식재료의 가치를 전파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태국의 식문화 수출 전략은 정부 주도의 ‘타이 셀렉트(Thai Select)’ 인증제도와 CP그룹 같은 민간 기업들의 효율적인 식자재 유통망을 통해 운영된다. 타이 셀렉트 인증제도는 정통 태국 식재료와 조리법 사용을 필수 요건으로 해 전세계 태국 레스토랑들이 자연스럽게 태국산 식재료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는 완제품 위주의 수출에 치중하면서 식재료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데 소홀했고, 해외 한식당들과 한국산 식재료를 연결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식재료의 프리미엄화와 품질관리 체계 구축이다. 한우고기·인삼·김치 같은 대표 식재료에 대해 철저한 품질 기준과 이력 관리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둘째, 해외 한식당과 한국 농산물을 연결하는 통합 인증·유통 시스템 구축이다. 이를 담당할 전문기관을 설립하거나 현재의 한식진흥원을 확대 개편해 한식당 인증과 식재료 유통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민관 협력을 통한 글로벌 유통망 구축이다. 특히 그동안 기피돼왔던 대기업의 농업 부문 진출에 있어, 수출만큼은 식품기업과 농가 간의 상생 협력 모델을 적극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권역별 저온유통체계(콜드체인) 물류센터 확충 같은 인프라 구축도 시급하다.

케이푸드 열풍은 한국 농업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한 문화적 현상을 넘어 산업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식당 앞에서 줄을 서는 외국인들을 보며 뿌듯해하기보다는 그들이 먹는 한식 속 쌀과 고춧가루가 진정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되는 날을 꿈꿔본다.

이상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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