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출신 은행원 박미연 하나은행 대리
2006년 입국 후 검정고시로 서강대 졸업
7년 전 29살에 입사..."워라벨 일상이 됐지요"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겠지만 직장 업무와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는 육아를 병행하는 워라벨을 정말 소중히 여겨요."
하나은행 서울 지역 지점에서 일하는 박미연(36) 씨는 7년 경력의 은행원이다. 한국에 정착해 몇몇 직장을 거치다 다소 늦은 나이에 얻은 일자리다.

중국에 체류하다 고교 2년 때인 2006년 한국에 입국해 정착한 미연 씨는 공부에 진심인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과정은 그에게 힘든 나날이었다. 교육과정이 다르고 말과 글이 달라 수업 시간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익숙한 건 수학이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서강대에 입학했다. 중국에서 국어(중국어)를 잘하기 위해 과외를 받았고 정규과정을 공부한 그는 중국어에 자신 있었다. 당연히 중국문학과를 선택했다.
대학 친구들은 미연 씨가 늘 상위권 성적을 놓치지 않는 '열정가'였다고 말한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그냥 외워서 얻은 결과물입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로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아니었고, 그래서 졸업 후 힘들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건 이유가 있어서다. 대학에서 나름 공부 좀 한다고 생각했던 미연 씨에게 '공부만 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일이 생겼다.
졸업 전 H중공업에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다. 같이 면접을 본 친구들이 합격하고 그는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미연 씨는 이러다가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빨리 취직해 자립하고 싶었던 미연 씨에게 연속되는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심기일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문을 두드렸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점점 주위 사람들을 피했고 스스로 자신을 가뒀다.

고민 없이 선택했던 전공에 대해 돌아보았다. 진로에 진지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됐다. 이렇게 살다 시집가나 하는 생각은 더욱 그를 우울하게 했다.
좌절과 은둔 생활에서 그를 구원해 준 건 남북하나재단의 취업 정보였다. '중견기업연합회'에서 그의 첫 회사 생활이 시작됐다. 일을 할 수 있는 데 감사하고 자신에게 기회를 준 데 감사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그는 상사와의 관계가 힘들었다. 그때를 돌아보며 지금이라면 달랐을텐데 하고 아쉬워한다. 지금은 회사 생활의 경륜으로 눈치 있는 척, 없는 척을 배우고 먼저 다가가는 법, 부딪히지 않고 피하는 법도 배웠다.
"지금은 뻔히 보이는 것들이 그땐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팀워크 과제가 많았는데 그게 힘들었어요."
고지식하고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혼자 맡은 일은 잘하지만, 협업이 어려웠던 것이다. 갈등을 피하지 못하고 1년 반 정도의 회사 생활을 마쳤다. 그 후 3개월 동안 면세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며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8년에 29살 미연 씨는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사실 채용 공고를 보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일단 지원하고 고민은 나중에하라'는 남자친구의 조언을 따랐다. 그는 '운이 따라줬다'고 말한다.
입사 초기 귀에 닿는 '금융'이나 '적금'이라는 말이 너무 낯설었다. 그러니 '펀드투자권유자문인력' '파생상품투자권유 자문인력' 시험을 통과하고 '생명보험, 손해보험, 제3보험 설계 자격증'을 따는 과정은 가시밭길 이었다.
첫 일년은 쉽지 않았다. 업무, 고객 응대, 승진시험 무엇하나 놓칠 수 없었다. 업무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경력이 쌓인 지금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그날 스트레스는 그날로 버린다.
"잊는 것도 노력하면 돼요. 잊지 못하면 내일 업무에 영향을 줍니다. 저는 빨리 잊는 장점이 있습니다."
미연 씨가 일하는 지점은 손님이 많다. 하루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간다. 동료와 소통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이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잊어버릴 줄 아는 노하우를 가졌다.
손님과의 관계는 일회성이지만 서비스 업무의 특성상 성의를 다한다. 상사나 친구와도 상대방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파악해 원만한 관계를 만든다.
1년 반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2003년 이후 그의 하루는 육아와 출근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자신은 물론 아들의 건강관리도 중요하다.
은행이 바빠지는 월말이면 연차나 휴가를 쓰지 않는다. 누구도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암묵적인 약속이다.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직원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침 6시 반 시작되는 일과는 밤 10반 아들에게 '책 읽어주기'로 끝난다. 규칙적인 삶을 유지하는 그에겐 동반자 남편이 있다. 그가 있어 빠듯한 하루가 고되지 않다. 미연 씨 옆에서 지지해 주고 때로는 위로해준 친구가 있었다. 큰오빠의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미연 씨의 결혼 기준은 결핍 없이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성실하고 양부모가 계신 친구는 그의 바람 그대로였다. 2013년 해외연수 중이던 어느 날 집의 기둥인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부모의 지원 없이 혼자 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미연 씨가 마지막까지 연수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건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과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시부모님 사랑도 듬뿍 받으며 결혼 생활이 이어졌지만, 몇 년이 지나도 손주는 안겨드리지 못했다.
새벽부터 4시간을 운전한 남편과 함께 경주에 있는 유명한 한의원을 찾았다. 한 달 반 정도 약을 먹고 아들과 만났다. 남편은 그의 임신 전 기간 출퇴근을 맡아 운전기사가 되어주었다. 지금도 아들과 놀아주고 집 청소를 도맡는다.
언제나 자기 역할에 충실한 남편, 그리고 주마다 밑반찬을 챙겨주시는 시부모님도 고맙다. 지난해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시아버님은 혼자 3일간 아이를 돌봤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지만,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미연 씨 가정은 지금 둘째를 계획하고 있다. 일과 가정 어느 하나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미연 씨에게 이제 워라밸이란 말은 낯설지 않은 일상용어가 됐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