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과거에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처럼 이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일각에서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경제적 실익은 다른 곳에서 취한다는 의문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안미경중은 한국이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면서도 경제는 중국과의 교역에 크게 의존하는 기조를 의미한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심하게 말하면 봉쇄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미경중의 입장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미국의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달라진 국제 정세를 설명했다.
이 같은 정세 변화 속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의 기본적 정책 흐름과 보조를 맞추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제 한국은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런 이 대통령의 정세 인식은 기업의 현실적 여건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간에 기술 패권 전쟁으로 공급망이 이원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주력산업인 반도체·배터리의 경우 원자재를 중국에 절대 의존하는 상태다. 당장 미국도 첨단산업에 필요한 희토류를 장악한 중국이 수출제한에 나서자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등에 대한 금수 조치를 일부 해제하기도 했다. 그만큼 첨단산업의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특정 국가와 척을 지기 어렵다는 속내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미국도 중국과 기본적으로 경쟁하고 심하게는 대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력할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범 정책실장은 “시대가 바뀌어서 경쟁과 대립이 심화하고 있지만 약간의 권역화 움직임도 있고 공급망 권역도 그렇게 흘러가는 시대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럴 때(안미경중)가 아니라는 취지”라며 “안미경중에 대해서는 대통령께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24일(현지 시간) 미국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도 “우리 외교의 근간은 한미 동맹”이라면서도 “외교에 친중·혐중이 어디 있나. 국익에 도움이 되면 가깝게 지내는 거고 국익에 도움이 안 되면 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미국 기조에 대한 분명한 동참을 요구하는 트럼프 정부의 특성상 한국에 미중 사이에서 더 확실한 입장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특히 아시아 동맹국 사이에서 주로 나타난 안미경중 기조를 꾸준히 경계해왔다. 올 5월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안미경중은 중국 공산당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라며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