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키즈’ 잘 키우려면

2025-12-08

지난달 27일 새벽, 남해안의 한 어촌에서는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아파트 16층 높이의 로켓이 꽁무니에서 거대한 화염을 뿜으며 새카만 어둠을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4번째 누리호 발사 순간이었다. 누리호는 떠오르는 태양 같았다. 밝고, 크고, 아름다웠다. TV와 인터넷으로 중계된 이 모습에서 가장 눈을 떼지 못한 이들은 강한 지적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었을 것이다.

우주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일은 ‘아폴로 계획’이 시행되던 1960년대 미국에서도 있었다. 사람이 월면을 걷는 경이로운 화면이 각 가정 안방에 생생히 전달됐고, 여기에 깊이 감동한 당시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국 사회는 ‘아폴로 키즈’라고 불렀다. 아폴로 키즈는 우주 분야는 물론 이공계 전반에서 활동하는 ‘어른 연구자’로 성장했고, 지금은 미국 과학기술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한국에서도 ‘누리호 키즈’가 바탕이 된 연구자 집단이 탄생할 수 있을까. 걸림돌이 많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누리호 발사 횟수다. 누리호는 내년 5차 발사, 2027년 6차 발사된다. 그 뒤에는 확정된 발사 계획이 없다.

최근 우주항공청이 7차 발사를 목표로 사전 준비 성격의 내년 예산을 확보했지만 액수는 20억원뿐이다. 누리호를 한 번 쏘는 데에는 1000억원 이상이 든다. 이번 예산은 “7차 발사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일 뿐 실제 발사 착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자칫하다간 누리호 발사가 끝난 2027년부터 ‘차세대 발사체’가 이륙할 2031년까지 한국 땅에서는 발사되는 로켓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면 발사체 부품을 만드는 국내 업계는 인력과 장비를 유지하기 힘들다. 그동안 쌓아놓은 기술적 비결이 손상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시사점을 던진다. 아폴로 키즈가 어른 연구자로 성장한 것은 미국이 아폴로 계획을 끝낸 뒤에도 우주왕복선과 국제우주정거장(ISS) 운영 등을 중심으로 우주 기술 생태계를 꾸준히 유지한 덕분이다. 꽤 많은 우주 기업이 잘 운영됐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우주 기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초입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누리호 키즈의 성장과 관련해 우려되는 일은 또 있다. 한국의 달 탐사 계획이다. 한국은 2032년 무인 달 착륙선을 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시점 월면에는 사람 발자국이 잔뜩 찍혀 있을 것이다. 미국이 2027년, 중국은 2030년 각각 우주비행사를 월면에 착륙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장기 거주가 가능한 유인기지도 지을 예정이다. 한국이 아무리 우주기술 후발국이라고는 해도 목표의 격차가 너무 크다.

이대로라면 한국 달 착륙은 탐사의 질과 파급력에서 주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무인 탐사선이 월면에 처음 내렸다는 사실이 국가적 자부심을 만들 수는 있지만, 달 유인 탐사 시대를 겨냥해 국제 공조에 바탕을 둔 신기술을 내놓는 편이 한국을 ‘주요 우주 플레이어’로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이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통신이나 제조업 기술을 활용하면 손잡고자 하는 나라는 많을 것이다. 이러면 누리호 키즈가 어른으로 성장해 꿈을 펼칠 일터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비상한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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