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조달과 국민 수용성이란 난제 해결하기 위한 포석 관측
송전망 목적·방향 불명확할 땐 국민 공감대 형성 어려울 수도

[주간경향]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설,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등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송전망 확충은 새해 정부가 시급히 풀어야 할 당면 과제 중 하나다. 전력 생산은 지방에, 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더 많은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쌓여온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6일 국무회의,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 및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송·배전망 확충 재원을 ‘국민펀드’ 방식으로 마련하자는 구상을 연이어 언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2038년까지 송·배전망 구축에 약 113조원이 필요한 상황과 한전 부채가 205조원 안팎에 달하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민펀드를 만들어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하고, 국민에게 투자 기회도 드리고 대대적으로 신속히 까는 게 어떠냐는 게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송전망 건설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한전의 재무 구조와 주민 수용성이다. 이 두 가지 난제 앞에서 송전망 건설은 진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국민펀드’ 제안은 지난해 9월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특별법)’과 맞물려 송전망 구축을 신속히 추진하려는 방안으로 해석된다.
특별법에는 345㎸ 이상 송전·변전설비 중 일부를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해 조기 확충하도록 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며 보상을 강화해 사업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별법이 재원 조달과 사회적 수용성을 장기기본계획에 포함하도록 명시한 만큼 국민펀드 구상은 이를 구체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관계자는 “한전 부채가 문제가 되자 국민의힘은 특별법에 민간자본 도입을 주장했고, 민주당은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대해 민간자본 도입은 빠졌다”라며 “이 대통령의 국민펀드 구상은 한전 부채 문제에 대한 제3의 방안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펀드가 재원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결정적 해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자본조달을 다원화한다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정책으로 평가할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한 전력 전문가는 “과거 민간자본으로 도로 등을 건설해 특정 민간에게 수익을 줘 문제가 됐던 사례처럼 민영화를 전제로 한 게 아니다”라며 “국민이 투자하고 수익도 나누는 형태를 고민한 발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국민펀드가 한전의 채무 문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는 있지만, 재원 설계와 수익 구조 문제로 금융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한전 부채가 심각하긴 하지만 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라며 “국민펀드를 구성해 펀드 참여자에게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게 되면 추가 재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여론을 의식해 이를 회피하려는 우회적 대응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요금 정상화가 전제되지 않은 펀드 조성은 설득력을 잃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프라 사업의 대원칙은 가장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한전은 국가 신용등급(AAA)을 바탕으로 시장 최저금리인 3~4%대에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반면 국민펀드가 민간 자금을 끌어오려면 국고채 금리에 상당한 위험 프리미엄을 얹어줘야 한다”라고 했다. 인프라 투자자가 통상 7~9% 수익률을 요구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펀드를 통한 조달은 금융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익 배분 방식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회 관계자는 “송전선은 단일 시스템이기 때문에 특정 구간의 전력 흐름을 분리해 산정하기 어렵다”라며 “A지역에서 B지역을 거쳐 C지역으로 흐르는 전기를 따로 구분해 계산하긴 어렵다. 국민펀드로 송전선을 건설해도 사용권이나 이용료를 어떻게 나눌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송전선은 구조상 전력 흐름을 구분하기 어려워 투자 단위별 수익 배분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됐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민 수용성은 송전망 건설의 제일 큰 과제로 간주된다. 국회 관계자는 “송전망 경과 지역 등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사업 주체가 한전에서 국민펀드로 바뀐다고 반대를 철회하는 게 아니다. 한전이 비용을 대든 국민펀드가 비용을 대든 갈등은 완화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펀드 설계 방식에 따라 주민 수용성 확보에 일부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남 신안군의 햇빛연금·바람연금을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수익공유 제도 모범 사례로 언급한 후, 송전망 구축 재원을 국민 참여형 펀드로 제안한 부분에 주목했다. 임 처장은 “주민 수용성을 당연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햇빛연금·바람연금처럼 국민펀드도 주민 이익 공유 관점에서 소득이 생길 수 있는 방안을 열어준다면 수용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국민펀드를 경과 지역 주민만 가입하도록 하거나 지역 주민이 가입했을 때 더 높은 수익률을 적용하도록 하는 방식이 가능할 수 있다. 만약 7% 확정 수익을 제시하고 그것을 지역 주민에게 우선적으로 허용한다면 주민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수용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민펀드 제안은 ‘재원 조달’과 ‘주민 수용성’이라는 송전망 건설의 난제를 해결해보려는 정치적·정책적 기획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송전망 건설의 목적과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면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더라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송전망을 왜,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호남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더 많이 보내기 위한 송전망이 정답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언급한 ‘U자형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력을 분산해 RE100 같은 제도가 지역에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방향 설정이 전제되는 게 본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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