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 예산 늘었지만…성장 마중물 끊긴 '소부장'

2026-01-06

정부가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키면서 중소벤처기업부의 정책금융 수단인 모태펀드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책자금 간 중복 투자를 이유로 모태펀드 예산 2,800억 원을 삭감하면서 모태펀드의 정책 추진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성장펀드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등 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모태펀드는 청년 창업, 소부장, 지역 기업, 혁신 모험자본 등 정책금융 지원이 절실한 영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모태펀드마저 AI 등 민간 투자 시장에서 이미 자금이 몰리는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경우 국민성장펀드와의 역할 중복으로 존립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모태펀드가 성과 중심으로 운용되면서 장기·고위험 분야를 뒷받침하는 정책 펀드 본연의 역할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모태펀드 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용 펀드 결성 실적은 전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투자 시장과 정부 자금이 성장성과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높은 AI·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 집중되면서 소부장 기업으로의 자금 유입이 사실상 막힌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소부장 산업이 AI·로봇 등 미래 핵심 산업의 기반이 되는 만큼 정책자금의 마중물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7일 중소벤처기업부의 ‘모태펀드 계정별·연도별 결성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소부장 계정의 펀드 결성 실적은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4년 11월 기준 소부장 계정 결성액이 649억 원에 달했던 것과 대비된다.

반면 모태펀드 전체 예산은 크게 늘었다. 2024년 4,540억 원이었던 모태펀드 예산은 지난해 8,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소부장 전용 펀드 결성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으로는 투자 시장의 AI 쏠림 현상과 정책금융 지원 축소가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 기조 장기화로 투자 환경이 위축되면서 투자자들은 실패 가능성이 높고 회수 기간이 긴 소부장 기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 기업 더브이씨에 따르면 소부장 분야에 해당하는 제조·화학 산업 스타트업의 지난해 투자금은 1,733억 원으로 전체 투자금의 2.6%에 그쳤다. 반면 AI 분야 투자 비중은 2022년 9.4%에서 2025년 23.6%로 급증했다.

AI 투자 열풍 속에 정부의 소부장 정책금융 지원도 빠르게 줄었다. 모태펀드 계정별 예산 현황을 보면 소부장 계정 예산은 2022년 600억 원에서 2023년 300억 원, 2024년 40억 원으로 해마다 감소했으며, 지난해에는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소부장 특별회계 기한이 2024년 12월까지로 예정돼 있었던 만큼 소부장 계정 출자를 중단했다”며 “삭감된 예산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초기 창업기업에 투자하는 중소기업진흥계정의 딥테크 기업에 분산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회는 소부장 산업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소부장 특별회계 기한을 기존 2024년 12월에서 2029년 12월까지 5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지속적인 재정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지난달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소부장 산업 특성상 장기 투자가 전제돼야 기술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고려됐다.

정부와 민간 투자 시장에서 모두 외면받고 있는 소부장 업계는 연구개발(R&D)과 기술 검증 비용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소부장 업계 관계자는 “소재를 개발해도 국내에는 이를 평가할 수 있는 공공 테스트베드가 부족하다”며 “비용 부담으로 기술 검증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투자자 유치 역시 쉽지 않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AI·데이터센터·로봇 등 핵심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소부장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간 정부의 소부장 정책은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해 기존 반도체 제품의 품질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반도체를 넘어 새로운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기술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기술 난이도가 높고 투자 위험이 큰 초기 소부장 기업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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