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청춘에 전하는 위로...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해피엔드'

2025-06-03

흔들리는 청춘의 한 단면을 그린 영화 두 편이 동시에 관객을 만난다. 중국 청년들의 무기력과 불안을 로드무비 형식에 담은 '브레이킹 아이스'(4일 개봉)와 일상과 우정에 균열이 생긴 일본 청소년의 성장을 그린 '해피엔드'다. 4월 말 개봉한 '해피엔드'는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중이다.

영화를 연출한 앤서니 첸 감독(중국계 싱가포르인)과 소라 네오 감독(미국에서 자란 일본인)은 경계인 성향의 주목 받는 아시아 감독이다. 첸 감독은 '해피엔드' 제작자이기도 하다.

표류하는 청춘 '브레이킹 아이스'

'브레이킹 아이스'는 중국 영화인데도 한국 말과 노래가 간간이 들린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도시 옌지(延吉)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국과 중국 문화가 혼재된 이 곳을 무대로 관광 가이드 나나(저우둥위), 상하이에서 온 엘리트 청년 하오펑(류하오란), 이모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는 샤오(취추샤오) 등 세 청춘의 불안과 성장을 그려낸다. 우연한 계기로 만난 셋은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도시를 배회하다가 갑작스레 백두산 등정에 나선다.

그간 도시 배경의 작품을 만들어온 앤서니 첸(41) 감독이 낯선 배경을 선택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때 경험한 고독과 소외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서점에서 만난 그는 "팬데믹 때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할 일이 없어지면서 감독의 정체성을 잃는 것 아닌가 하는 우울과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털어놓았다.

가까스로 '코로나 블루'에서 탈출한 그가 자신의 경험을 요즘 청년 세대의 보편적 정서로 표현한 게 이 작품이다.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는 중국의 탕핑 세대가 느끼는 감정을 영화로 포착하려 했다"는 첸 감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패를 겪은 세 청년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사고로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꿈이 꺾인 나나,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도 불행한 하오펑, 꿈도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탕핑 세대의 전형인 샤오. 첸 감독은 "부모 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없고, 미래가 불안하기만 한 중국 청년들은 변화를 일으킬 힘이 없다"며 "이들을 좌절케 한 건 중국의 사회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얼음은 도입부의 얼음 채취 장면을 비롯해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첸 감독은 "한 가지 형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 얼음이 표류하는 청년을 은유하는데 적합했다"며 "빨리 친해지고 빨리 헤어지는 주인공들에게 남는 건 기억과 감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백두산에 오르는 일주일 간의 낯선 경험은 이들의 정체된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첸 감독은 "국경 도시 옌지는 삶에서 길을 잃고 모호한 경계에 놓인 세 청춘들이 만나는 완벽한 곳이었다"면서 "친구의 추천으로 백두산에 오르자마자 엔딩을 여기서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요 설정인 단군 신화는 이들이 백두산 등반 길에 겪는 기이한 체험과 맞물리며 큰 울림을 준다. 첸 감독은 "호랑이가 포기할 만큼 힘든 굶주림을 곰이 참아내고 인간이 됐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며 "단군 신화의 핵심인 '인내'를 통해 외롭거나 길 잃었다고 느끼는 청춘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억압·균열 속 성장 '해피엔드'

'해피엔드'는 소라 네오(34)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단편작 '더 치킨'(2020), '슈가 글래스 보틀'(2022)에서 불안정한 청춘의 마음을 그려냈던 그는 이 영화에서도 청춘의 마음 속 소용돌이를 세밀히 포착해낸다.

영화는 근 미래의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구김살 없는 성격의 유타(쿠리하라 하야토), 재일 한국인 코우(히다카 유키토), 패션에 관심 많지만 늘 주눅 들어있는 아타(하야시 유타), 대만 혼혈인 밍(시나 펭), 미국 혼혈인 톰(아라지) 등 졸업을 앞둔 고교생들이 주인공이다.

음악연구 동아리 소속인 이들은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혼란도 감당하기 벅찬데, 학교와 사회 시스템까지 숨 막히게 한다. 코우가 사회 현실에 눈 뜨면서 유타와의 우정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기엔 소라 감독 자신의 경험이 투영됐다.

지난 4월 말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반 원전 시위, 월가 점령 시위 등을 겪으며 내 정치적 성향을 알게 됐다"며 "그 후 가깝게 지낸 친구들과 정치적 견해 차를 이유로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소라 감독은 근 미래의 도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극심한 모순을 영화를 통해 드러낸다. 지진 대비와 국가 안전을 명분으로 외국인 차별·혐오를 제도화하는 정부, AI(인공지능)를 통한 규제를 당연시하는 학교 등 폭압적 사회 시스템이 스크린에 얽혀 드는 이유다.

그는 "대학 시절 식민지 역사와 권력 구조에 관심이 생겼다"면서 "관동 대지진 때 저지른 과오에도 불구하고 지진만 발생하면 당연한 듯 터져 나오는 혐오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타와 코우는 출신 배경과 자라난 환경이 다른 탓에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는 코우와 달리, 유타는 자신만의 본능적 방식으로 저항한다.

소라 감독은 "아직 어리지만 자신만의 정치적 신념을 정립하고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코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보면 끝(END)이지만, 주인공들의 우정은 행복(HAPPY)으로 마무리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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