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영양사의 항산화클럽 ‘나를 건강하게 바꿔준 식재료’ 당근
자잘하게 아픈 게 일상일 때, 또는 크게 아픈 후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이때의 문제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것. 영양사 경력 20년이 넘는 전문가, 밝은영양클래식연구소(BNCL)의 정성희 소장도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는 데 5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임상 실험하며, 염증 수치를 정상으로 체중을 20kg 감량한 정소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 이야기를 ‘나를 바꾼 식재료’라는 주제로 풀어봤다.
식습관 관리와 운동으로 한결 가벼워진 나는 체력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성격도 다시 찾아가기 시작했다. 긴 시간 업무에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피곤함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노하우, 그러니까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내 몸과 마음이 산화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나만의 방법도 하나씩 생겨갔다.
달라진 점이 또 있다. 감각이 섬세해졌다. 어떤 음식이 내게 이로운지 아닌지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덕분에 불편한 몸의 상태도 빠르게 알아차렸다. 예를 들면 정제 탄수화물처럼 불균형을 일으키는 음식에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별 탈 없이 먹었지만(그렇게 생각했지만), 컨디션이 좋아진 뒤로는 가스가 차거나 소화가 안 돼 잠을 설치게 된 것이다.
몸이 계속 좋지 않았다면 “난 원래 그래. 원래 소화 잘 안 돼”라며 지나갔을 일이다. “원래 그렇다”는 말에는 해결의 의지가 없다. 반복되면 감각이 둔해지고 체질, 습관, 가족력 등으로 약한 부분이 질병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으면 작은 이상 신호 정도는 작게 움직여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은 라면을 잘 먹지 않지만, 먹게 되는 날은 일단 맛있게 먹고 3일 정도 식단관리에 들어가는 식이다. 내가 먹은 라면을 몸 밖으로 잘 배출하기 위함이다.
좋아진 몸 상태가 내심 뿌듯했지만, 사실 내게는 다음 단계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동양의학과 철학에서는 건강의 단계를 위생·보생·양생으로 구분한다. ‘위생’은 몸이 좋지 않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다. ‘보생’은 몸을 관리하는 시기인데, 건강의 균형이 깨지려 할 때 어떻게 보완하는지 스스로 아는 단계다. 마지막 ‘양생’은 각자의 체질에서 타고난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단계다.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시기인데 당연히 건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밑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나는 ‘보생’과 ‘양생’의 경계에 있었다. 그저 뿌듯함에서 머물 것인가, 생생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단계로 나아갈 것인가의 기로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목표를 잡았다. 내 몸을 더 단단하고 균형 있게 만들기 위해, 이번에는 당근을 먹기로 했다.
복합탄수화물인 당근은 혈당을 천천히 올려줘
전분성 뿌리채소인 당근은 복합탄수화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종류의 단당류와 이당류, 그리고 다당류인 섬유질을 풍부하게 포함한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의 필수영양소로 몸이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자 뇌와 근육의 연료다. 특히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을 합성하는 과정에 탄수화물은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설탕과 빵, 음료에 많이 든 단순 탄수화물과 비교하면 복합탄수화물은 몸속에서 분해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혈당을 서서히 올린다는 뜻이다. 또 복합탄수화물에 포함된 식이섬유가 포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장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운동 시 근육 저장을 돕고 운동능력도 높여줘
당근에는 베타카로틴을 비롯한 다양한 카로티노이드와 여러 미량영양소도 함유돼 있다. 주황색을 띠게 하는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A로 변환돼 간의 재생을 돕고 시력 보호,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다양한 카로티노이드의 항산화 효능이 암과 심장 질환의 위험 인자들을 감소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생리 작용이 세포 손상을 줄여 동맥경화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복합탄수화물은 호르몬 균형에도 도움을 준다. 또 근육 저장에도 필수적인 영양소라 운동능력을 높이고 근육량을 보조하도록 돕는다. 양생의 단계에서 크로스핏과 F45 같은 강도 있는 운동에 도전하는 중이던 내게 당근은 정말 잘 맞는 식재료였다.
가장 쉽게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는 당근 수프가 있다. 유독 일어나기 힘든 아침에는 당근·양파를 기름에 충분히 볶아 수프를 끓이곤 했다. 그 위에 레몬·생강즙을 뿌려 먹으면 속이 따뜻해지면서 하루를 밝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다. 단풍 보러 가는 산행이나 소풍이 있는 날에는, 당근을 채 썰어 살짝 볶고, 강황밥·단무지·우엉·계란지단·시금치를 넣어 김밥을 쌌다. 닭고기 요리를 먹을 때는 당근 라페를 곁들였다.
당근 특유의 달콤한 맛을 내는 당근즙은 늦은 오후에 찾아오는 눈의 피로를 물리치기에 딱이다. 올리브유와 소금을 살짝 뿌려 먹으면 감칠맛이 좋고 지용성 비타민 흡수에도 도움이 된다. 더 색다르게 먹고 싶을 때는 몇 가지 채소를 더해 스무디로 만들었다. 당근·양배추·사과를 넣은 스무디나 당근·미나리·양파를 넣은 스무디다. 갈아둔 당근에 아몬드가루·달걀 등을 넣어 스펀지 빵을 구워도 맛있다. 어떻게 조리해도 색이 변하지 않는 단단한 주황색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온기와 에너지를 주는 느낌이다.
정성희 영양사·밝은영양클래식연구소 소장 cook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