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1000명 외국인 모셔라” 불타는 드럼통 4개 들인 사연

2026-01-04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

1945년 해방은 또 다른 고군분투의 시작이었습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기쁨은 곧, 국제사회에 나라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책임으로 바뀌었습니다. 1948년 초대 대통령에 당선한 이승만 박사와 초대 정부 내각은 유엔에 주목한 까닭이었습니다. 유엔 한국위원회의 방한에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이중일씨입니다. 한국인 1세대 웨이터이자 ‘미장 그릴’이라는 이름의 양식당을 해방 직후 오픈해 성업 중인 인물이었죠. 1948년 12월, 이중일씨는 이런 지시를 받습니다.

1000명이 참석하는 연회를 준비하게. 양식 뷔페 스타일로 하고 각별히 신경을 쓰게. 장소는 창덕궁 인정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실패할 수 없는 미션이었습니다. 하지만 물자도 넉넉하지 않고 난방시설도 없는 인정전에서 1000명의 귀빈을 모신다? 이중일씨는 이 미션 임파서블을 해냅니다. 그가 직접 1971년 중앙일보에 쓴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만나 보세요.

사실 확인을 위해 다양한 관련 서적과 사료를 참고했습니다. 보완해 추가한 내용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참고문헌 목록은 기사 끝에 적시했습니다. 운전 중 또는 다른 일을 하시면서 기사를 ‘듣고’ 싶은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구글AI스튜디오로 생성한 오디오입니다. 변사 스타일로 들려드리는 오디오 버튼은 기사를 읽다 보시면 나옵니다.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⑭ 밤새워 고기 썰고 감자 깎은 사연

중앙일보 1971년 3월 11일자 (1)

해방 후 국제사회에서 지위를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대한민국 정부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게 우선 과제였다. 그 발돋움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부닥친 것이 유엔 한국위원단 일행의 방한이었다. 국내 사정은 어수선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받느냐, 못 받느냐의 기로에서 맞이하는 중요한 방한 손님이었다.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서둘렀다.

환영위원회가 꾸려졌고 위원장은 ‘미장 그릴’의 단골손님, 조병옥 박사가 맡았고, 부위원장은 정일형 박사였다. 환영 파티의 음식과 서비스는 내게 책임이 주어졌다. 방한하는 유엔 한국위원단 일행은 70여 명이었는데, 환영 파티엔 1000명이 넘는 인사가 참석했다. 장소는 창덕궁 인정전이었다. 1000명이 동시에 식사해야 하다니, 우선 집기가 문제였다.

우선 내 개인 소장품을 총동원했지만, 200명 분의 집기가 전부였으므로 태부족이었다. 나는 이왕실(해방 후 왕실은 이렇게 불렸다)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1000명 분의 접시며 술잔 등 비품을 빌릴 수 있었다.

식재료도 난관이었다. 새우 등 생선을 확보하느라 1주일 전부터 수산시장을 헤맸던 기억이 생생하다. 식재료 이후엔 서비스를 점검해야 했는데, 그때가 12월이었기에 난방도 문제였다. 인정전 궁궐에 스팀 등 난방이 있을 리 없었다. 궁리 끝에 드럼통 큰 걸 네 개 구해 그 안에 숯불을 피우고, 연회를 치를 공간의 네 귀퉁이에 놓았다. 그렇게 하면 뜨거운 공기가 순환이 되면서 홀 안이 따뜻해질 것이란 계산을 한 것이다. 문제는 임시변통이었기에 불티가 날라가 식탁에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많은 양은 아니었기에 식탁의 재를 불어가면서 만찬을 준비하던 기억이 새롭다.

유엔 한국위원회 손님들이 머무르는 동안 국회의 각 분과위원회 위원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외교 공세를 펼쳤다. 철기 이범석 장군은 사냥총을 메고 한국위원회 대표들을 야산으로 데리고 갔고, 방기환씨는 자신의 경기도 양주 별장으로 위원들을 초대했다. 또 다른 그룹은 행주산성으로 가서 피크닉 형식의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 ‘미장 그릴’ 요리팀이 총동원되어 뒷바라지했다.

유엔 한국위 대표들은 1947년 2월엔 당시 부산시장이었던 양성봉씨(이후 농림부 장관이 됐다)의 초청으로 부산에 내려가기도 했다. 나는 당시 환영위원장 조병옥 박사의 부탁을 받고 쿠크(셰프)와 웨이터들을 미리 내려보냈다. 조 박사는 당초 내게 “직접 내려가서 진두지휘해 달라”고 했으나 나는 “부산에서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데 조 박사가 자신의 경무부장실(경찰청장실)로 출두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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