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자가 되지 맙시다

2025-07-15

2018년 발간된 『검사내전』은 ‘생활형 검사’ 김웅의 고군분투기다. ‘사기공화국’의 인상적 일원이 여럿 등장하는데, ‘선한 사마리아인’도 있다. 이런 얘기다. 30년 택시 모범운전자가 보행자를 들이받아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혔는데 줄곧 “보행자가 무단횡단했다”고 주장했다. 몇 달 조사 끝에 경찰은 운전자의 횡단보도 신호 위반으로 판단했다.

"수사·기소 분리 이견 없다"지만

기왕 '개혁'에 이미 현장선 비명

여당안대로면 구제 기대 접어야

구속 중 검사(김웅)를 만난 운전자는 자신은 사실대로 말했다고 호통쳤다. 피해자는 시종일관 파란불에 건넜다고 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을 자처한 인근 병원 사무장이란 목격자의 진술도 같았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선배 검사의 조언에 따라 현장을 찾았다. 자신의 퇴근길(오후 11시30분)에 이어 여느 사람의 퇴근길(오후 6시)에 다시 갔지만 달리 볼 만한 건 없었다. 체증을 뚫고 복귀하는 길에야 깨달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지나는데 어떻게 피해자만 들이받혔지.”

목격자를 다시 부르자 “이렇게 자꾸 귀찮게 굴어 시민들이 목격자로 나서지 않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수사해 보니 이동경로·신호체계상 목격자가 사고를 목격할 수 없었다. 사례금을 노린 허위 진술이었다. 피해자의 말도 바뀌었다. 낮술 한 상태에서 신호를 보고 건넜으나 중간에 신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무단횡단 보행자 사고였다.

김웅은 “운전자는 풀려났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내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아니다’라고 하자 ‘어차피 검사가 한 게 아니냐’고 했다. 그때 검사동일체 원칙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고 썼다.

김웅은 2018년 검경 수사권 조정 때 검찰 대응 업무를 맡았다. 이듬해 “수사권 조정이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사표를 냈다. 그 조정안이 2021년부터 시행됐는데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부여한 것이다. 경찰도 마음대로 수사하게 했다. 2022년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까지 이뤄졌다.

현 체제에서 그 운전자가 신호 위반 혐의를 벗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블랙박스 덕이지, 검사 덕은 아닐 것이다. 경찰이 수사를 종결하면 사실상 그걸로 끝나서다. 문제는 경찰이 ‘경찰영장검사’ 신설까지 노릴 정도로 욕심내지만 걸맞은 실력(또는 의지)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중앙SUNDAY에 실린 정재민 변호사의 경험담에서도 생생하다. 노트북 수리 사기 현장을 112에 신고했더니 경찰이 출동하지 않으려 해 “내가 변호사인데, 사기·횡령·공갈 같은 형사 건도 되고 범죄가 진행 중인 현행범”이라고 하자 2명이 출동했는데, 사기꾼이 겁박하는데도 몇 마디 안 하더라는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어땠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동일한 주체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면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거여(巨與) 정권의 기세등등함에도 반발(또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미 민생범죄를 다루는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으로 치장해 ‘수완 좋은’ 이들을 향한 수사를 막느라 복잡다단하게 만들어서다. “검찰이 사실상 간판만 안 걸었지, 공소청이 되어가고 있다”(김후곤)는 말까지 나온다. 정작 돈도, 배경도 없는 피해자의 구제는 부지하세월이 됐다. 민주당 안대로 되면 구제 기대마저 접어야 할 수 있다.

민주당 밖(이견들)에선 공감대도 있다.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을 주고 모든 사건이 검찰에 송치(전건 송치)되게 해 검사가 사후라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하자(보완수사)는 것이다. 정시 퇴근의 신세계를 맛본 검사들이 예전처럼 일하려 들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웅은 『검사내전』에서 “재판정에 나가보면 피해자의 반신불수보다 피고인의 치질이 더 중병 취급받는다. 그러니 제발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마시라. 피해자는 실제론 2등 국민”이라고 했다. 이젠 재판정에도 못 가는 3등, 4등 국민이 많다. 5, 6등 국민까지 만들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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