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황보림 ‘중력의 힘’

2026-01-01

벽시계 추처럼

끊임없이 움직여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터득한 듯

코끼리 코가 좌우로 물체를 감지하고 있다

물렁물렁한 살덩이가 때로는 철심처럼 튼실하게 중심을 잡는다

불어 닥치는 바람 한 줄기도 거침없이 말아 올리는 촉수

태엽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수단이다

억센 풀밭을 헤집으며 작은 풀 하나도 능숙하게 뽑아내는 것은

늘 바닥을 직시하는 긴 코의 연륜 때문이다

한여름 수렁논에서 김을 매던

뚝심 깊은 아버지의 팔뚝이 그러했다

논바닥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잠시 쉴 틈도 없이 벼와 벼 사이에서

보호색을 띠며 점령해 오는 피*를 용케도 골라 뽑아내셨다

움푹짐푹한 들녘을 평평하게 펼쳐내는 두 팔

질척한 개흙 속을 훑어 내며 벼 포기들을 퍼렇게 키워냈다

뭉툭하고도 세심한 아버지의 근육

직립과 중력 사이 검붉은 현을 켠다

태엽을 감고 돌아가는 괘종시계처럼 멈추지 않는 아버지의 톱니바퀴 소리

무거운 짐 짊어지고

먼 트레킹 길에 나선 코끼리처럼

농로를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농투성이

아버지 발걸음이 시계추처럼 다시 수렁논을 향한다

중력의 끈은 참으로 질기다.

* 피; 볏과에 속하는 한 해살이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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