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일상 뒤로 아날로그 음악 여행 떠나요

2025-03-16

음악 듣기 참 쉬운 시대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과 귀에 쏙 들어가는 이어폰만 있으면 듣고 싶은 노래를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으니. 하지만 음악을 ‘충분히’ 감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퇴근길 지하철의 덜컹거리는 소음,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카톡 알림은 지금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조차 잊게 한다. 경기 파주에 있는 ‘콩치노 콩크리트’는 음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콩치노 콩크리트는 2021년 5월 문 연 레코드판(LP) 음악감상실이다. ‘콩치노(concino)’는 ‘합주하다, 울려퍼지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다. 운율을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를 ‘콩’크리트로 변형해 이름을 붙였다. 건물은 이름처럼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지어졌다. 단단한 기둥이 거대한 회색 직육면체를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스피커와 의자가 놓인 거대한 홀이 펼쳐진다. 맨 앞에는 성인 키의 갑절은 되는 대형 스피커 두쌍이 놓여 있다. 하나는 미국 회사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의 M2, 다른 하나는 독일 회사 ‘클랑필름(Klangfilm)’의 유로노어 주니어(Euronor Junior)다. 모두 1930년대에 생산돼 당시 대형 극장에서 쓰이던 것들이다. 90세를 넘긴 노장들이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여전히 강렬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선 클래식과 재즈가 흐른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 행크 모블리가 1965년 발매한 ‘The Turnaround!’, 루이 암스트롱 모음집, 비발디 플루트 협주곡 Op.10이 이어졌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을 제외하곤 자유롭다. 우선 2층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에만 집중해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지 않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 학창시절 음악 시간 이후 처음 시도해보는 일이다. 스피커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2층에선 음악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된다. ‘꽝’ 하는 악센트가 있는 부분에서는 깜짝 놀라고, 통통 튀는 높은 음의 건반 소리를 들을 땐 피아노 위에 올라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3층으로 자리를 옮겨본다. 동쪽과 서쪽 양 벽면에 발코니 형태로 자리가 마련돼 있다. 이곳의 매력은 벽에 난 통창에 있다. 동쪽 창 밖으론 소나무숲이 펼쳐져 있고, 서쪽 창가에선 임진강을 볼 수 있다. 동쪽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숲멍’을 즐겨본다. 어느 대극장에 가더라도 하지 못할 경험이다. 일몰 무렵에는 재빨리 서쪽 창가 앞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빨갛게 물든 해는 부끄러워하는 듯,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눈부시게 빛난다. 강과 점점 가까워지던 해는 하늘에 붉은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렇게 이날 마지막 곡도 끝나간다.

오정수 콩치노 콩크리트 대표는 10대 때부터 40년 넘게 LP를 모아왔다. 성인이 돼서는 오디오 장비도 수집했다. 그러나 집에서는 LP 감상을 위한 완벽한 환경을 조성할 수 없었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공간 콩치노 콩크리트를 연 이유다. 오 대표는 평일에는 본업인 치과의사로 일하다 주말에는 콩치노 콩크리트의 DJ로 변신한다. 소장 중인 1만장의 LP 중 원하는 음반을 골라 방문객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클래식, 오디오 시스템, LP가 지닌 수백년에서 수십년에 이르는 역사를 콩치노 콩크리트를 통해 지켜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입장료 1인 2만원.

LP란?

‘Long Playing Record’의 줄임말. LP가 발표된 1948년 당시 사용하던 SP(Standard Playing Record)보다 재생 시간이 훨씬 길어 붙은 이름이다. SP 한면의 재생 시간이 4분30초 이내라면 LP는 20분이 넘는다. 1990년대 들어서 테이프와 CD가 보편화되며 LP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최근에는 LP 특유의 복고풍 감성 덕에 이를 듣고 수집하는 것이 2030세대 사이에서 취미로 각광받고 있다.

파주=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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