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응원가로 가장 유명한 노래를 하나만 꼽자면 ‘그대에게’가 아닐까 싶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고(故) 신해철이 이끈 그룹 무한궤도에 우승의 영광을 안긴 곡이다. 시작부터 청중의 귀를 번쩍 트이게 하는 강렬한 멜로디도 압도적이지만 가사 또한 피 끓는 청춘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경희대 응원단이 처음 응원곡으로 채택한 이래 수많은 대학의 축제 또는 응원제 현장에서 이 노래가 화려한 군무(群舞)와 함께 울려 퍼진다. 1988년 발표된 곡이 2000년 이후 태어난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까지 받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한양대 응원단은 2023년 ‘가리워진 길’이란 응원가를 처음 선보였다. 한양대 음대 81학번인 싱어송라이터 고 유재하가 쓴 곡이다. 연애, 군 입대, 취업 등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대학생들의 번민이 녹아 있는 가사가 일품이다.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 그대여 힘이 돼주오 / 나에게 주어진 길 / 찾을 수 있도록.’ 얼핏 듣기엔 흥을 북돋워야 할 응원곡으론 어울리지 않는 다소 슬픈 멜로디이자 가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한양대 응원단은 이를 응원제의 엔딩 곡으로 활용한다. 성대한 축제가 종료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둔 청춘들에게 보내는 담담한 메시지가 아련한 느낌을 선사한다. 연휴 마지막날의 심경과 똑 닮았다고 할까.
‘가리워진 길’이 한양대 응원가가 된 데에는 연세대 응원곡 ‘서시’(序詩)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부터 불리기 시작한 이 노래는 ‘죽어도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 없길’이란 가사로 시작한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1941년 졸업한 고 윤동주 시인이 쓴 시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3악장의 곡을 붙여 만들었다. 연주와 합창을 시작하기에 앞서 연대 응원단장이 큰 목소리로 “하늘에 계신 윤동주 선배님께 바칩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연대생들이 윤 시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만큼이나 한대생들도 유재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젠 세상에 없는 선배를 기리는 응원가라니, 그 의미가 참으로 남다른 듯하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고려대가 올해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고대 응원단이 재학생은 물론 교직원과 동문들을 상대로 4월29일까지 새 응원곡 공모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져 눈길을 끈다. 고대 응원가 중 제일 널리 애창되는 노래로 ‘민족의 아리아’(2003)가 있다. 고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조지훈 시인이 학교와 학생들의 건승을 기원하며 지은 ‘호상비문’(虎像碑文)이란 글에서 가사를 따온 곡이다. 고대 응원단이 “제2의 민족의 아리아를 만들고자 한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으니 과연 어떤 노래가 탄생할지 기대된다. 새 응원곡이 잠자던 호랑이도 벌떡 일으켜 세워 온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포효하게 만들 만큼 웅장하길 고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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