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처음으로 무알코올 와인을 주문해봤다. 무알코올 와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작년 말 뒤숭숭한 정국에도 송년 모임이 줄지 않아 몸과 마음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연말 모임에서 주목도 받고 술도 적게 마셔볼 요량으로 무알코올 와인을 선택했던 것이다.
무알코올이어서 전자상거래를 이용해 와인을 집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기존 와인과는 다른 편리함이었다. 내가 주로 구매했던 무알코올 와인은 미국에서 만든 스파클링 로제였다. 미국 언론이 추천한 무알코올 리스트에 자주 올랐던 와인이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가격도 1만원대로 합리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달았다. 이 와인은 어린잎차에 사탕수수 시럽과 감귤 생강처럼 천연 추출물을 섞어 와인의 복합미를 대신했다. 열량은 130㎉였다(750㎖ 기준). 일반 와인의 칼로리가 600~900㎉인 것에 견줘 꽤 낮다. 그렇지만 당분과 천연 추출물이 기존 와인의 맛과 향을 대체하지 못했다. 와인보다는 탄산음료에 가까웠다. 샤르도네로 만든 3만원대 가격의 논알코올 와인도 비슷했다.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이었지만 설탕이 들어가 단맛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주세법상 과세 대상인 와인이 주류에 포함되지 않으려면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이어야 한다. 외국도 비슷하다. 그런데 왜 0%가 아니라 1% 미만일까? 그 이유는 발효된 술에서 알코올을 제거하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탓이다. 어떤 공정으로도 와인의 알코올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알코올이 0.00% 이하여야 무알코올을 붙일 수 있다. 0.0~1% 미만은 논알코올 와인으로 분류된다. 무알코올 와인은 기존 와인으로는 만들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알코올 제거도, 와인 향과 맛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왜 업계에서는 무알코올 와인을 만드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무알코올 주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성인용 음료시장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주류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젊은층(18~34세)의 음주 인구 감소가 가장 가파르다는 점이다.
관련 시장은 급팽창 중이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IWSR 보고서에 따르면 무알코올과 저알코올(3.5% 이하) 시장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의 90%는 무알코올 음료가 이끌 것으로 분석됐다.
와인의 역사는 술 가운데 가장 유구하다. 포도는 높은 당도 덕에 일정 조건에서 저절로 발효돼 와인이 된다. 인간은 19세기 현미경으로 효모를 발견하기 전까지 와인의 발효를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그래서 와인을 ‘신의 피’라며 신성화했다. 신의 피에 대한 호기심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 ‘와인을 끊는 호기심’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몸을 위해 재화를 아끼지 않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공지능의 추월을 지켜봐야 하는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