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서명원 신부 "'교황님'보다 '아버지' '친구'가 더 어울리시는 분"

2025-04-22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친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당신의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인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는 이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당신께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했다는 생각에 가누기 힘든 슬픔을 느낍니다. 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함께 견딜 수 있도록, 로마 가톨릭 교황으로서 당신께서 전 세계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약자들, 아픈 이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가난한 이들, 그리고 착취당하는 존재들 편에서 그들을 꾸준히 보살피는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신 덕분에, 가톨릭 교회 안팎에서 교황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아버지 프란치스코’, ‘친구 프란치스코’, 또는 ‘형제 프란치스코’라는 호칭이 더 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당신은 세상으로부터 초연한 로마 한복판의 바티칸이라는 먼 나라의 사무실에서 머무르며 외롭게 서 있는 교황으로 인식되는 대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종이요, 모든 사람과 가까워지게 만든 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비 확장 경쟁과 그로 인해 수많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강력하게 호소하고 평화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대체 불가능한 평화의 중재자(peacemaker)로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

이는 산업-군사 복합체의 과도한 권력과 무기 판매를 통해 얻는 막대한 수익이 민주주의와 법치에 기반한 세계 질서의 근간을 체계적으로 훼손하여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만 봉사하고, 공동선(common good)에 해를 끼치는 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첫 번째 예수회 출신의 교황이 되신 당신께서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창조의 선물(the gift of Creation)에 대해 보여준 경이로운 관조적 태도를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에서 당신은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날카로움으로, 우리 공동의 집이요 어머니인 지구에 대한 과도한 착취가 초래하는 심각한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병든 문명을 지속 가능한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삶의 방식에서 겪어야 할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제시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또 회칙 ‘모든 형제(Fratelli Tutti)’에서, 전쟁, 자연재해, 기후 변화로 인해 집과 고향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인간을 형제자매로 맞아들일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께서는 이웃 간에 성벽을 쌓아 올리고 서로에 대해 경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두 팔을 벌려 환대하고, 불공정한 세계 질서로 인하여 초래된 인류의 고통에 대하여 공동 책임을 져야 할 것을 일깨우셨습니다.

우리의 형제 프란치스코여, 부디 평안히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비의 증인인 당신께서는 해야 할 바를 다 해내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남겨주신 것처럼(요한 19:30), 당신께서도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남기시어 그 영을 상속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세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듯, 당신께서도 천국의 모든 성인과 함께 우리가 지상에서 날마다 겪는 고통을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서명원 신부, 베르나르도 스네칼SJ

프랑스 팡레무티에(Fain-lès-Moutier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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