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교육 담당분야 취재를 마치면서 2년간 썼던 기사를 돌아보고 크게 반성했다. 수백개 기사 대부분이 입시에 관한 내용이었다. 입시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큰 이슈지만 실상은 상위 10%만의 치열한 경쟁일지도 모른다. 학교 안에 다양한 이야기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했다.
최근 부동산, 정확히는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을 다루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사교육과 강남 아파트는 묘하게 닮았다. 너도나도 한마디를 거드는 국민적 관심사다. ‘1등’에게만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욕망의 ‘끝판왕’이기도 하다.
분명 ‘7세고시’로 불리는 대치동 사교육과 호가가 2억~3억원이 떨어졌다고 해도 30억원이 훌쩍 넘는 강남 아파트는 ‘그들만의 리그’다.
강남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간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날의 문제를 다 못 풀면 집에 못 간다는 대치동의 한 수학 학원이 제주도까지 전국에 지점을 내듯이 강남의 집값 상승세도 시간이 걸릴지언정 마·용·성과 노·동·강에 이어 서울 전역, 수도권으로 번져나간다.
2019년 하반기에도 강남 3구의 신고가 거래는 6개월 뒤 노·도·강으로 퍼졌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적어도 사교육은 아이가 없는 가구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부동산은 그러나 의·식·주에 해당한다.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강남발 집값 상승이 서울과 수도권 전역으로 퍼지면 궁극적으로 전월세까지 밀어올린다. 상승한 전월세는 또다시 집값을 올린다.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통보가 주택 구매를 결심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수요가 늘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올해 부동산 상승 심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기점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정부에서 부동산이 오른다’는 속설도 매매심리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불안감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는 기로에서 이재명 정부는 6·27 대출 규제를 내놨다.
6억원 초과 주택 대출을 틀어막자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은 지난 10일 7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값이 0.29%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6월 넷째주 0.43%까지 높았던 상승폭이 2주 연속 줄어든 것이다. 일단 강남발 집값 상승 기세는 주춤해졌다. 이 대통령이 해체설까지 나온 금융위원회의 김병환 위원장과 권대영 사무처장을 공개적으로 칭찬한 이유일 테다.
문제는 다음 스텝이다. 이 대통령은 “맛보기”라고 했지만 다음 단계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선거 때부터 종합부동세든 보유세든 부동산 세제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4기 신도시도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에게 부동산을 질문하면 주식으로 답이 돌아온다. 부동산으로 돈 벌려 하지 말고 주식으로 벌라고 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강남 집값 잡기’에 멈춰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강남 아파트’에서 ‘전국 주택’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보자. 윤석열 정부에서 공공 임대주택 착공 물량이 확연히 줄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지난해 임대주택 착공 물량은 2만1975호로 2019년 4만4947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례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 안 샀다”면서 LH가 고가 매입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규정이 바뀌었고 공공 임대주택 물량도 감소했다. 공공 주택 정책이 정권에 따라 휘청하고, 건설 경기 영향에 따라 속도를 못 낼 수도 있다. 그러니 장기적 시각이 중요하다.
공공 주택은 사회 전체의 주거 안정성을 높이는 중요한 인프라다. 지금처럼 매년 임대 물량이 들쑥날쑥 변동이 크고, 장관 한마디로 정책 방향이 흔들리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양적으로뿐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질적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얼마 전 새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됐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지명 직후 “서울 등 일부 지역 주택시장이 과열되고 있는 만큼 선호 입지에 양질의 주택을 신속히 공급하고 안정적 시장 관리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속함만 강조하면 자칫 탈이 날 수 있다. 꾸준함이 신속함이다. 주거 선택지를 넓히는 공공주택의 ‘백년지대계’가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의 다음 스텝이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