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달라도 수법은 하나…쏟아지는 '고수익방 피해자' [SNS 부업 사기 해부③]

2025-01-17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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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도, 은행 구제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 “그 정도면 적은 돈, 잊고 살라”…또 다시 상처

SNS 부업 사기 해부③ 쏟아지는 '고수익방 피해자'

부업 채널은 달라도 사기 수법은 하나였다.

17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말부터 현재까지 최근 3주간 경기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수십명의 온라인 부업 사기 피해자들을 만난 결과, 이들은 각자 다른 SNS·채팅앱·가상계좌플랫폼 등을 이용했음에도 피해 과정이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통속으로 움직이는 사기 일당의 범죄 행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사기 피해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아이 어쩌나”…1억3천만원 잃은 미혼모의 눈물

수원특례시에서 남편 없이 혼자 7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20대 여성 A씨는 생계를 위해 SNS를 통해 머리핀 만드는 부업을 알아봤다. 처음 시작한 건 지난달 9일, 그리고 이틀 만인 12월11일 ‘사기 피해자’가 됐다.

당초 ‘라인’앱에서 만난 담당자는 유튜브 영상을 캡처하는 일이라며 3차례의 ‘인증샷’을 요구했다. 캡처본을 보내자 담당자는 A씨의 가상계좌가 생겼다며 그 안에 부업의 보수로 2만5천 원을 입금했다고 알렸다.

A씨는 “가상 계좌에 있는 돈이 실제로 출금 되는 것을 보고 ‘진짜구나’ 하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며 “거기서부터 그냥 완전히 믿게 됐다”고 말했다.

출금 완료 후 담당자는 “이제부터는 채팅메신저 ‘R앱(가칭)’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며 앱 설치를 유도했다. R앱에서는 부업 사이사이 ‘투자 미션’이 진행됐다. 먼저 선입금이 돼야 미션이 시작될 수 있는 방이다.

돈이 없다는 A씨의 말에 담당자는 “초보자는 5만 원부터 할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초보자 미션으로 11만 원을 투자해 21만 원을 번 A씨는 해당 부업을 신뢰했고, 담당자가 제안한 ‘VIP 미션’에도 참여했다.

팀 단위로 진행되는 VIP 미션은 하루에 세 차례 진행됐다. 팀원 모두가 동일한 투자 미션을 완료하면 출금이 가능한 식인데, 최종 출금 단계에서는 늘 A씨의 실수를 탓하며 위약금을 물도록 했다. 예컨대 팀원 4명 중 3명이 100만 원을 투자(한 척) 하고, A씨가 100만 원을 투자하지 못하면 “너 때문에 우리 모두가 출금을 못 했다”고 깎아내리는 방식이다.

담당자의 비난과 팀원들의 원망에 다급해진 A씨는 결국 19살 때부터 모아둔 전재산 1억3천만 원을 털어 위약금을 지불했다.

이후로는 A씨의 잦은 실수로 신용 점수가 떨어졌다는 둥, 서버 데이터 상 오류가 생겼다는 둥 갖은 이유를 대며 출금을 거부했다. 그제야 사기라는 걸 눈치챈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이) 범죄 조직이 해외에 있으면 특정이 어려워 그냥 수사 종결할 수도 있다고 했다”며 “돈을 돌려받기는 힘들 거라고 했다”고 힘없이 말했다.

수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는 A씨는 “경찰에서 발급받은 사고사실확인서를 은행에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며 “제가 당한 사기는 보이스피싱이 아니라 구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탄했다.

■ 미술품 입찰 하라더니, 정체 모를 ‘팀 미션’ 초대

파주시에 거주하는 30대 중반 물류업 종사자 B씨는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두는 게 신경 쓰였다. 퇴근 이후 어린이집에 가면 남아 있는 아이는 본인의 자녀뿐이라는 사실에 B씨는 재택근무를 결심했다.

그때 지역 맘카페에서 ‘갤러리 관리 보조업무’ 공고를 발견했고, 바로 지원했다. ‘라인’에서 대략적인 업무를 알려주던 담당자는 최소 5만5천 원에서 최대 8만6천 원에 이르는 간단한 미술품 입찰 업무를 ‘가짜로’ 줬다.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한 B씨에게 담당자는 “더 수익성 높은 일이 있는데 팀 단위로 진행되는 업무라 전용 채팅방이 필요하다”며 라인이 아닌 또 다른 채팅앱 설치를 요구했다.

그 곳에선 팀원 모두가 제한 시간 내에 정해진 금액을 입금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팀 미션’이 하루 5번 진행됐다. 처음엔 업무 속도가 빠르다며 팀장과 팀원 모두 B씨를 칭찬했다. 최종 미션까지 완료했지만 팀장은 “B씨의 실수로 모두가 돈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그를 탓했다. 초조해진 B씨가 팀장에게 해결 방법을 묻자, 팀장은 2천 만원의 위약금을 요구했다.

돈이 없다는 B씨 말에 팀장은 끊임없이 다른 계좌의 이체한도 조정이나 대출 등을 강요했다. 결국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돼 팀장과의 대화가 중단됐다는 B씨는 3일 동안 약 1천800만 원을 손해봤다.

■ 은행도, 경찰도 “해결 방법 없다”…보이스피싱과 다른 부업 사기

계약직 간호사인 C씨(30·고양특례시)는 잦은 야간 업무와 민원에 시달리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접한 건 ‘수작업 부업’이었다.

담당자는 재료를 받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걸리니 유튜브 영상 시청 알바 먼저 시작하라고 안내했다. C씨의 빠른 응답과 업무 처리능력을 칭찬한 담당자는 C씨를 ‘VIP 미션그룹’에 초대했다. 코인(을 빙자한) 투자를 하면 더 큰 수익을 준다는 식의 ‘미션’이다.

C씨는 “고수익 알바는 실제 코인 거래 사이트 이름과 동일한 사이트에서 진행돼서 의심할 생각도 못했다”며 “코인 구매한 수익금을 처음엔 실제로 출금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30만 원을 요구하던 담당자가 마지막엔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도록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투자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C씨는 업무를 중단하고 원금 1천200만 원이라도 출금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출금 담당자’가 C씨의 ‘잦은 실수’를 지적하며 거절했다. 낮은 신용 점수가 문제인데, 이걸 5천만 원을 내고 복구하면 추후 출금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C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본인이 송금했던 계좌를 전부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더치트’에 등록했다. C씨는 “어떤 분이 ‘본인의 계좌가 사기 계좌로 등록됐는데 누구신데 제 계좌를 등록하신 거냐’는 연락을 보내기도 했다. 더치트에 등록한 계좌 중엔 도용된 계좌도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름대로 구제방안을 알아보던 C씨는 “사고사실확인서를 제출하면 구제받을 수 있는지 (은행에) 문의했지만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아니라 안 된다고 했다”며 “그나마 적은 돈이니 인생 교육 받았다고 생각하고 잊고 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동일한 내용을 경찰에도 물었지만 “사고사실확인서 발급은 가능하지만 전기통신금융사기가 아니라 은행에서 구제받을 방법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C씨는 “전기통신금융사기가 왜 보이스피싱에만 해당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럴거면 그냥 보이스피싱 사기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전국 각지서 쏟아지는 피해자…"사회 인식·제도 개선돼야"

경기일보는 이 외에도 수많은 피해자를 만났다. 특히 ‘SNS 부업 사기 해부’ 기사가 보도된 이후로도 제보가 속출했다.

네 명의 아이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려다 7천600만 원을 잃은 20대 주부 D씨(남양주시), 적은 급여만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부업을 하려다 400만 원을 날린 1998년생 부부 E씨(충북 진천군), 지방으로 이사한 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부업이라도 하려던 30대 구직자 F씨(충남 서산시), 퇴근 후 소일거리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보려다 고수익 미션방에 낚여 500만 원을 잃은 30대 직장인 남성 G씨(제주 서귀포시) 등이다.

특히 D씨는 여러 유형의 피해 사례를 모으고 구제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 직접 ‘R앱 피해자 단톡방’을 개설해 활동 중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중간책’이 된 50·60대 중년 남성 등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부업을 미끼로 한 사기 수법은 ‘용역 제공’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확언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서준배 경찰대학 교수는 “부업 사기는 법의 허점을 노린 것”이라며 “통신사기피해환급법(전기통신금융사기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환급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법의 보호를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부업사기 적용 여부는) 법리 해석의 문제인데, 사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당한 사람이 바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적극적인 법리 해석을 적용하지 않는다”며 “SNS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사기는 세계적인 흐름인데 아직까지 우리만 이걸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사회적 인식 개선이 안 돼 제도 개선도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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