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반도체, 데이터센터,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는 전력 소모와 발열이 가장 큰 숙제인데 높은 열전도도와 낮은 누설 전류를 갖는 2차원 반도체를 활용하면 칩의 온도를 더 낮게 유지하면서도 연산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전자소자로 개발한 2차원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AI, 자율주행, 초고속 통신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2월 수상자로 선정된 이관형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3일 ‘하이포택시(Hypotaxy)’ 기술의 의미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하이포택시 기술은 2차원 반도체 박막의 새로운 합성법으로 이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박막이란 원자층이 여러 겹 쌓여서 만들어진 얇은 막을 말한다. 해당 연구는 과기정통부 기초연구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올해 2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바 있다.
평면구조의 2차원 반도체는 아주 얇게 만들어도 전기적·열적 특성이 뛰어나 차세대 반도체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 공정으로는 박막이 균일하지 못한 문제 등으로 인해 2차원 반도체를 넓은 면적에서 고성능 반도체로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탓에 최근 반도체 기술은 수직으로 쌓는 3차원 구조로 발전하고 있으나 층이 많아질수록 전력 소모와 발열 등 문제가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이포택시는 2차원 반도체와 3차원 반도체의 단점을 모두 개선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 교수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재료 배열 방식을 택했다. 원래는 기판 위에 결정을 쌓는 ‘에피택시’ 방식이었다면 아래(하이포)의 뜻이 담긴 하이포택시는 반대로 재료가 기판 아래 배열되는 구조다. 이 교수는 “비유하자면 아파트를 지을 때 땅에서부터 기초공사를 하는 대신 공중에 떠 있는 기준 틀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아파트를 가지런히 세워나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공정의 핵심은 신소재 일종인 그래핀이다. 연구팀이 그래핀으로 덮인 금속 박막에 황이나 셀레늄 가스를 흘린 결과 그래핀에는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이 구멍을 통해 들어온 원자들은 그래핀 격자 방향에 맞춰 결정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핀이 일종의 틀처럼 작용하며 아래 결정의 방향을 잡아주는 새로운 방식인 셈이다.

연구팀은 원자 1층 수준부터 수백 층까지 박막 두께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교수는 “2차원 물질은 원자층 수준의 두께에서도 결정성을 완벽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다시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이포택시는 섭씨 400도에서도 2차원 반도체를 합성할 수 있어 고온 공정 제약이 큰 실제 반도체 공정에 적용하기가 용이하다.
좋은 연구 성과를 내려면 집요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하이포택시 연구는 한두 해 만에 나온 결과가 아니라 10년 가까이 2차원 재료를 키우고 붙이고 쌓아보면서 실패와 우연 그리고 집요한 관찰이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며 “실험을 반복하다 보니 의도와는 다르게 그래핀이 사라지고 그 자리 아래에서 2차원 반도체가 자라는 현상을 관찰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예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로부터 시작한 연구였는데 실패한 연구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태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면서 “열심히 연구한 학생이 결과가 잘 나오지 않거나 논문이 계속 거절되면서 자신감을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 예전에 직접 겪었던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최대한 옆에서 버팀목이 돼주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AI 반도체 ‘게임체인저’ 개발에도 도전하겠다는 구상이다. 3차원 적층 기술로 구현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현재 AI 시장의 판도에서 핵심 반도체로 자리 잡은 것처럼 미래 AI 산업에서 채택될 수 있는 차세대 AI 반도체를 상용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하이포택시로 성장한 2차원 반도체를 이용해 로직 소자, 메모리, 센서 등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어 어느 응용 분야에서 가장 큰 장점을 발휘하는지 비교·평가하려고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2차원 반도체와 3차원 적층 메모리, 뉴로모픽 소자 등을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AI 칩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리콘 이후의 반도체 플랫폼을 우리 손으로 설계하고 구현하려고 한다”며 “실험과 이론, 공정과 설계가 한 팀에서 이뤄지는 종합 반도체 연구실을 만들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원천 반도체 기술과 인력을 스스로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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