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年華] 라벨에 관해 우리가 알고 싶은 것들

2024-09-28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남편이 프랑스어를 배워야겠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라벨을 보고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클래스 초급반 수업에서도 수강생들은 가장 궁금한 것으로 라벨 읽는 법을 꼽았다. 친근하지만 언제나 먼 그대인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독일어…. 눈앞에서 펼쳐지는 외국어의 향연 앞에서 까막눈이라도 된 듯 작아진다고. 외국어에 능통하기보다는 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몇 가지 패턴을 익히는 것이 원하는 정보를 파악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라벨을 기록하는 방법은 생산지역의 이름을 강조하거나 브랜드명과 품종을 강조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구대륙, 후자는 신대륙에서 이용한다. 초보자들이 읽기 힘들어하는 것이 생산지역명을 기록한 구대륙의 것이다. 유럽에서 와인은 체화된 생활 습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 역사와 궤적을 함께 하며 아주 오랫동안 문화로 자리를 잡았기에 사람들은 산지나 생산자명만으로 포도의 품종과 양조 스타일을 추측할 수 있다. 굳이 라벨에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마치 우리가 서울식, 전라도식, 경상도식 김치를 떠올리면 절임의 농도나 젓갈의 종류를 기록하지 않아도 맛 추측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대륙은 라벨에 어떤 것을 기록하는지 보르도를 통해 살펴보자. 먼저 와인명을 적는다. 보통은 포도원을 뜻하는 샤토(Château)로 시작하며, 생산자가 곧 와인의 이름인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원산지 통제명칭(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AOC)이다. 이는 산지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관한 법적인 규정을 모두 통과했다는 의미다. AOC의 d'Origine(원산지)에는 메독, 오메독, 그라브 같은 구체적인 지명이 기록되는데, 하부 지역으로 좁혀질수록 좋은 와인이다. 한국쌀보다 경기미, 그것보다 이천쌀이 더 좋은 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다음은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의미하는 빈티지를 기록한다. 외에도 알코올 도수와 용량, 생산자 정보와 함께 양조한 와인을 어디서 병에 담았는지도 기록한다. Mis en bouteille au château와 같은 문구가 있다면 생산한 곳에서 직접 병에 담았다는 말이다. 그랑크뤼 클라세 혹은 크뤼 부르주아처럼 좋은 품질임을 알려주는 등급 표기도 있다.

보르도의 라벨이 다른 모든 유럽 와인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프랑스의 다른 지역이나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도 나름의 라벨 표기 방식을 따르며, 지역에 따라 용어나 정보가 달라진다. 보르도 외 다른 프랑스 지역의 도멘, 이탈리아의 까스텔로와 테누타, 스페인의 보데가스 혹은 까스띠요, 독일의 바인굿은 모두 샤토와 같은 의미다. 스페인은 리제르바(Reserva), 그랑 리제르바(Gran Reserva)와 같은 숙성 정보, 독일은 카비넷(Kabinett), 슈페트레제(Spätlese)처럼 당도와 숙성에 관한 용어가 추가된다.

후발주자인 신대륙은 역사가 짧은 탓에 고착된 지역별 특성이 빈약하다. 덕분에 와이너리의 브랜드와 포도의 품종이 더 중요하다. 생산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를 위해 직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그림이나 상표와 같은 눈길을 끄는 디자인을 채택하고, 포도 품종, 알코올 도수, 당도, 와인의 특징 등을 간결하면서 이해하기 쉽도록 표시한다. 또 신대륙은 상품성 좋은 와인 생산을 위해 정부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하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없어 빈티지별로 품질의 차가 크지 않다. 덕분에 빈티지는 큰 의미가 없다. 간혹 칠레 와인에서 리제르바(Reserva), 그랑 리제르바(Gran Reserva)와 같은 숙성정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법적인 규정은 아니고 생산 와이너리 내에서 좀 더 좋은 등급이라 이해하면 된다.

라벨은 병에 담긴 내용물에 관한 안내서이지만, 생산자가 임의로 붙일 수 없다. 유럽연합은 병의 크기와 알코올 도수, 활자까지 규정하는데, 2024년 수확한 포도부터 기존과는 새로운 규제가 적용된다. 칼로리, 탄수화물 등의 영양 정보를 표기해야 한다. 포도 원액의 비율, 이산화황 함량을 포함해 알레르기 경보와 저알콜 와인의 유통기한, 당분 추가량까지 필수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이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와인뿐만 아니라 유럽으로 수입되는 것도 동일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처음 들으면 어려운 내용처럼 느껴지지만, 기본형을 두고 그 위에 더해가는 형식이라 자주 접해서 눈에 익으면 라벨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편은 프랑스어를 배웠을까. 이리저리 개인교습 강사만 알아보다 수업 진행은 불발되었다. 지금은 생산자명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은 어렵지만, 라벨 읽는 것이 어려운 단계는 지났다. 와인 클래스를 마치고 며칠 뒤 문자가 왔다. ‘그래서 선생님, 2020년 빈티지면 와인을 병에 담은 해 맞죠?’ 맞는 말일까, 틀린 말일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답이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송시내 수필 쓰는 나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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