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공정근로위원회(FWC)는 지난 4월 눈에 띄는 결정을 내렸다. FWC는 보육 종사자, 약사, 기타 의료 전문가, 사회복지사 등에 관한 재정(裁定·award)을 두고 이 직종의 임금이 “성별에 기반한 과소평가의 대상”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해당 직종 종사자들은 많게는 35%의 임금 인상을 단계적으로 적용받을 전망이다.
이번 결정은 국가 기관이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주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호주 언론은 이것이 공정근로법(Fair Work Act) 개정의 성과라고 분석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이끄는 현 노동당 정부는 2022년 공정근로법을 개정하며 ‘성평등’을 명시적으로 추가했고, FWC가 임금에 관한 재정에서 성별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FWC는 공정근로법에 근거한 독립기구로서 FWC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호주 언론은 이번 결정으로 약 17만5000명의 임금이 인상되고, 33만5000명은 간접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의 성별 임금 격차 지표를 보면, 2023년 기준 한국은 29.3%로 부동의 1위다. 호주는 11.3%로 OECD 평균과 같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축에 속하는 호주가 성별 임금 격차 시정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이번 결정의 의의, 앞으로의 과제를 듣기 위해 레이 쿠퍼 시드니대 교수를 이달 초 e메일로 인터뷰했다. 쿠퍼 교수는 젠더와 노동 분야 전문가로, 고등교육·직장 정책 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9년 호주 훈장(Officer)을 받았다. 그는 이번 결정이 “직업의 가치와 성별화된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소요되는 재정은 “비용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쿠퍼 교수와의 일문일답.

-호주 언론은 이번 결정을 ‘획기적인 결정(landmark ruling)’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왜 그렇게 중요하며, 호주 사회와 여성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결정을 ‘획기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우리가 직업의 가치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성별화된 노동 및 성별로 구성된 노동력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분야의 일자리는 수십년 동안 과소평가됐다. 그 이유는 그 일을 수행하는 주체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직무 수행에 필요한 기술의 난이도 같은 요소를 반영해 직업의 가치를 판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이 판결을 통해 예고된 임금 인상의 규모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문에는 ‘성별에 기반한 노동 과소평가(gender-based undervaluation of work)’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력의 성별 때문에 해당 직무의 임금이 깎여서 책정되고 있고, 그로 인해 실제로 행해지는 일이나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임금 수준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사, 기타 의료전문가 등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진 것은) 이러한 분야가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고도로 성별화된 산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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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이번 결정을 환영한 반면 사용자 단체는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FWC의 검토 절차와 청문회 과정에서 주요 쟁점은 무엇이었나?
“여성이 다수를 이루는 직종의 임금과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재정적 비용이 따른다. 이는 사용자들과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는 정부 재정 당국 모두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여성이 다수인 직종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기대는 사라져야 한다. 비용뿐만 아니라 이점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 유아 교육, 장애인 및 고령자 돌봄 등 여성 다수 직종의 서비스 기준을 향상시키면 노동력 공급이 늘어나고,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또한 향상될 것이다.”
-FWC 결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소비자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되리라 우려한다.
“이번 결정이 정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핵심적인 쟁점이다. 이 문제를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더 나은 틀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 외에도 호주에서 일자리의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직업, 산업, 부문별로 존재하는 굳건한 성별 분리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노동 시간 측면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 현재는 남성들이 장시간 근무 직종에 종사하는 반면 여성들은 단시간 근무 직종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방식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게끔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불균형을 평등하게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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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꼽힌다. 이 분야 연구자로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여성은 직장에서 자신이 기여한 바를 존중받고 전문성을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이는 단지 개인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도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한국의 노동 관련 체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호주 사례를 바탕으로 세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번째는 노동조합에 가입하라, 두번째는 차별에 관한 관계 기관에 문제 제기하고 조언을 구하라, 세번째는 당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라는 것이다.”
-한때 한국에서는 ‘출산 가산점’이 거론돼 많은 여성들의 분노를 샀다. 이러한 종류의 정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우 퇴행적인 정책이다. 남성과 여성 간 차이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을 구축해야 한다. 직장을 돌봄 친화적으로 만들고 남성도 돌봄 노동을 더 많이 분담하도록 하는 것이 아이를 낳도록 장려하는 더 나은 방식이다. 아빠도 부모 아닌가.”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