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공론장 열자"…법조계 "숫자보단 시스템 문제"

2025-06-05

조희대 대법원장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대법관 증원에 대해 “공론의 장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 강행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가운데 사법부 수장 역시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도 단순한 인력 확대보다 상고심 구조 개편이 우선이라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받은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회 의견서를 낼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본래 기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무엇인지 계속 국회에 설명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증원 논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단순한 인력 충원이 아닌 제도 전반 개편을 위해 숙고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대법관 수를 두 배 이상 늘릴 경우 전원합의체 운영 방식의 근본적인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현행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통상 13명이 참여하며, 이 중 3분의 2 이상인 9명 이상이 출석해야 회의가 성립된다. 하지만 30명 체제로 전환되면 기존처럼 사건을 일괄 논의하는 방식은 사실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전원합의체를 30명이 참여하는 식으로 하려면 시간도 배 이상 걸릴 뿐 아니라 핵심 쟁점을 간명하게 논의하기도 어렵다”며 “결국 선임 재판관 중심 소부로 전환하든가 전원합의체 기능 자체를 분산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법관을 보좌할 재판연구관·재판연구원 등 보조 인력 확충 역시 필수다. 현재처럼 하급심 판사 등에서 충원할 경우 1·2심 재판부의 인력 공백과 처리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고등법원에 있을 경험 많은 판사들이 대법원 연구관으로 빠져버리면 현장에 남은 사람들은 일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전체 사법 인력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날 비공개로 진행된 법안소위원회에서 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이 “대법관의 수를 대폭 증원하는 것은 우리 사법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며 “단기간에 대법관의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를 새로 임명할 경우 필연적으로 당시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조계 또한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해소하려면 대법관 증원이 아닌 상고심 제도의 틀 자체를 손보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1심과 2심을 거친 대부분의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간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지금은 모든 사건이 대법원에 쏟아지는데, 그걸 사람이 더 많아지면 해결된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구조 개편의 대표적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상고허가제’다. 대법원이 상고심 대상 사건을 선별해 법률 해석이 쟁점인 사건만 심리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로 독일·일본 등 주요국에서 운영 중이다. 다만 상고허가제 도입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다. 우리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이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고허가제가 사실상 3심 재판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헌법소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에도 상고허가제 도입이 검토됐지만 재판 받을 권리를 제한한다는 반발이 커서 흐지부지됐다”며 “이번에도 국민 설득이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제도 도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의가 장기적으로 대법원의 ‘정책법원화’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대법원이 단순한 사건 처리 기관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와 사회적 기준을 정립하는 정책 중심 사법기관으로 기능하고 일반 상고 사건은 별도의 상고법원에서 담당하게 하는 이원적 구조를 의미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 법원조직법 개편, 심급 구조 재설계 등 사법 체계 전반의 대개편이 전제돼야 하며, 정치·사회적 합의 역시 필수라는 점에서 실현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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