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한화 안치홍은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타석에 섰다.
이날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안치홍은 안경을 쓰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그리고 두번째 타석인 3회에는 홈런을 쳤다. 안치홍은 이도윤의 내야 안타, 이원석의 볼넷 등으로 만들어진 2사 1·3루에서 롯데 선발 터커 데이비슨의 초구 포크볼을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안치홍의 올시즌 첫 홈런이었다. 이 홈런으로 3-0으로 기선을 잡은 한화는 6-0으로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안경을 향해 관심이 쏠렸다. 안치홍은 “원래 시력이 안 좋았다.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어제(16일) 검진을 받았더니 ‘이 상태로 하면 공을 보는게 힘들어질 수도 있다’라고 들었다. 일상 생활할 때만 안경을 썼는데 이제 경기를 할 때에도 쓰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력은 0.6정도로 엄청나게 나쁜 건 아니었는데 난시, 원시 등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그동안 경기 중 안경을 쓰겠다고 선뜻 결심하지 못한 건 수비 때문이었다. 안치홍은 “내야 수비를 할 때 안경이 불편하다. 땅볼을 잡을 때 흔들릴 수도 있고 공에 맞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그동안은 안 쓴 것”이라고 했다.
렌즈도 착용해봤지만 잘 맞지 않았다. 안치홍은 “20대 후반에는 렌즈도 껴봤는데 경기 중간에 빠져나오고 그랬다. 이제 렌즈도 낄 수 없다더라”고 전했다.
안경을 쓰고 뛰고 있는 동료인 채은성에게 조언을 구했다. 안치홍은 “물어봤더니 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안경을 끼고 있었다고 하더라. 일부러 이질감을 없게 만들려고 계속 쓰고 다녔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안치홍도 이제 안경과 함께 하는 생활에 더 익숙해지기로 했다.
홈런도 쳤으니 이제는 적응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홈런 상황에 대해 안치홍은 “데이비슨이 낮은 변화구가 좋은 투수라서 높은 쪽으로 들어오는 실투를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과감하게 치려고 했는데 변화구가 약간 높게 오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돌이켜봤다.

프로야구에서는 안경을 쓴 타자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안경을 쓰고 타격이 좋아진 사례도 있었다.
박용택은 LG에 입단하기 전 라식 수술을 했지만 프로 생활을 소화하면서 시력이 떨어졌고 2011년부터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안경 착용과 함께 좋은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고 은퇴를 할 때에도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한화 이성열도 2018년 안경을 쓰면서 장타력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이성열은 그 해 34홈런을 쏘아올렸다.
현역 선수 중에서도 안경을 쓴 타자들이 꽤 있다.
KT 허경민은 지난 시즌부터 안경을 쓰고 경기에 나섰다. 스프링캠프에서 타격감이 좋지 않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안경을 써봤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계속 착용을 한다. 그는 “렌즈를 끼면 공이 보여야 될 찰나에 이물감이 느껴졌는데 안경을 쓰니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수비할 때에도 크게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삼성 윤정빈, 두산 김동준 등 젊은 선수들도 안경 착용을 꺼리지 않는다. 윤정빈은 지난해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장타력을 선보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동준은 “시력이 안 좋아서 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각막이 얇아서 못 해서 안경을 쓰게 됐다”라고 전했다. 김동준은 올시즌 팀의 주전 선수로 자리잡는 중이다.
안치홍도 안경을 쓰고 팀에 보탬이 되는 활약을 할 예정이다. 5월까지 20경기 타율 0.094(64타수 6안타)에 그치며 부진했던 안치홍은 최근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다. 지난 14~15일 대전 LG전에서 두 경기 연속 멀티히트로 팀의 선두행을 이끌더니 이번에는 홈런까지 나왔다.
안치홍은 “이제 날씨가 더워지고 다들 힘들어할 때인데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분 좋다”라며 “매 경기 이긴다는 생각으로만 하려고 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