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배당절차 개선 방안을 시행한 지 2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 중 절반 가량은 여전히 개선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매출 상위 20개 제약·바이오 기업 중 9곳이 '깜깜이 배당'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기존 배당 절차를 개선하는 정관 변경을 시행한 곳은 7곳으로, 지난해 이미 배당 절차 개선을 시행한 4곳에 더해 총 11개 기업이 '선(先)배당액 확정, 후(後) 배당 기준일 지정(배당받을 주주확정)' 제도를 도입했다.
제약·바이오 절반 가량 '깜깜이 배당'
지난해 1월 금융당국은 배당금을 우선 확정하고 배당받을 주주 명단을 확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배당금액을 보고 투자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배당절차를 개선한다는 목적이었다.
배당절차 개선안 도입이 의무는 아니었지만, 포스코나 신한금융지주 등 대기업과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절차 개선에 나서기 시작해 현재 다수 기업이 개선 작업을 마쳤다.
금융위는 개선방안 시행 이래 전체 2381개(유가 791개, 코스닥 1590개) 회사 중 43%에 달하는 1011개 회사가 정관을 변경했으며, 지난해 정관을 개정해 올해 배당을 실시한 322개 기업 중 이른바 '깜깜이 배당'을 실제로 해소한 회사는 109곳에 달했다고 지난 4월 밝혔다.
제약·바이오 기업 중 가장 먼저 배당절차 개선 기조에 동참한 곳은 한미약품과 HK이노엔, 동아에스티, 휴온스다. 지난해 3월 휴온스는 배당기준일을 주총 의결권 행사 기준일과 다른 날로 정할 수 있게 이사회에서 배당을 할 때마다 결정하고 이를 공고하도록 정관을 고쳤다. 한미약품과 HK이노엔, 동아에스티도 정관을 '배당을 받을 주주를 확정하기 위한 기준일을 정할 수 있고 기준일을 정한 경우 그 기준일의 2주 전에 공고해야 한다'로 변경했다.
다만 이들 4개사가 모두 실제로 변경된 정관에 따라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결정한 이후 배당을 받을 주주 명단을 확정하진 않았다. 한미약품, HK이노엔, 동아에스티는 이전처럼 지난해 12월 말을 기준일로 잡았다. 휴온스만 올해 2월 14일 현금배당 결정과 동시에 기준일을 결정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배당기준일 및 배당절차 관련 정관 규정을 정비했으나 제11기 정기주주총회에는 적용하지 않았다"면서 "향후 주주에게 배당예측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 셀트리온, 종근당, GC녹십자, 광동제약, 동국제약, 한독,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배당 기준일 설정 기준 관련 정관 변경을 시행했다. 이중 기존에도 배당 기준일 전 이사회 결의를 통해 '현금, 현물배당결정'과 '주식배당결정' 공시를 제출해 예측가능성을 제공한 셀트리온을 제외하면 모두 올해는 현금 배당관련 예측가능성을 제공하지 못했다. 정관 변경에 따른 개선된 절차 진행은 내년에 가능해질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유한양행, 대웅제약, 보령, JW중외제약, 제일약품, 일동제약, 대원제약, 일양약품 등 9개 기업은 올해도 정관 변경을 시행하지 않았다. 이중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일동제약을 제외한 7개 기업은 올해 현금배당을 진행한 기업으로 내년에도 배당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정관변경을 시행하지 않았으므로 따로 이사회 결의를 통해 관련 공시를 내지 않는 한 내년에도 '깜깜이 배당'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일동제약은 올해 포함 최근 3년간 현금배당을 진행하지 않은 기업이지만, 마찬가지로 현금배당을 하지 않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정관변경을 시행했다는 점에서 배당절차 개선 기조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관 변경을 시행하지 않은 기업 중 유한양행과 대웅제약 등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를 통해 배당절차 개선 관련 상장회사협의회 표준정관 개정안 반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JW중외제약은 향후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배당기준일 이전 배당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배당 후 주주확정제도를 도입하려면 정관변경이 먼저 이뤄져야 해서 아직 검토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배당 절차 개선, 국제 표준 부합
배당절차 개선을 시행하지 않은 제약·바이오사는 내년에도 이전처럼 올 12월 말을 배당기준일로 정해 해당 기준일의 주주에게 이익배당을 실시하겠단 방침이다. 실제 배당 여부와 배당액은 통상 1월 말에서 2월 초에 열리는 이사회 결의에 이어 3월 중하순에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즉 투자자는 짧게는 1개월(배당기준일-이사회 결의일), 길게는 3개월(배당기준일정기주주총회일) 동안 배당 관련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깜깜이 투자'에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 주주 A가 1월에 주식을 처분하고, B가 해당 주식을 매수해 3월까지 보유했다고 가정하면 배당금은 정기주주총회 배당액이 확정되는 3월 당시의 주주 B가 아닌 12월 말 기준 주주인 A가 받는다. 1월 이후 주식을 매입하는 매수인(B) 입장에서는 거래 당시 주가에서 배당액 지급으로 인한 주식가치 하락분(배당락)을 공제한 금액을 매매대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깜깜이' 기간 동안 배당락 등이 주가에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지속된 국내 기업의 배당 절차와 관행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배당 기준일부터 배당액 확정일까지 기간 동안 배당액을 모른 채 주식을 거래하는 국내 주식시장 관행은 이른바 '깜깜이 투자'라 불리며 MSCI나 ACGA(Asia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 등 외국인 투자자 비판을 받았다.
국제적으로도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국가(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는 배당액을 먼저 확정하고 배당기준일을 나중에 정하거나, 배당액이 확정되는 주주총회일을 배당기준일로 정하는 방식으로 배당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위 등 유관기관은 배당 절차 개선 여부를 기업지배구조보고서(자산규모 5000억 이상 기업)에 공시하도록 하는 한편 한국거래소가 제시하는 15개 지배구조 핵심지표에도 배당절차 개선 여부를 포함해 상장회사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했다. 또 지속적으로 설명회·컨설팅 등을 통해 홍보·안내를 강화할 예정이다. 벌점·제재금 등 제재처분을 1회에 한해 6개월간 유예해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기업 밸류업 우수기업 인센티브 확대에도 나선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달 결산배당에 이어 분기배당도 배당절차 개선이 가능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분기 배당에 대해 3·6·9월 말일 당시 주주를 대상으로 45일 이내 이사회 의결로 배당액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분기 말일을 배당기준일로 고정하고 이후 45일 이내에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액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번 개정안에는 배당기준일을 '3·6·9월 말일'에서 '분기 말일부터 45일 이내 의사회 의결'로 바뀌는 내용이 담겼다. 아직 국회 본회의 의결 등 남은 절차가 있지만 여야 이견이 없는 법안으로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 관계자는 "배당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배당률도 낮아 장기투자 환경이 조성되지 못해 국내 투자자들은 단기 매매차익 위주의 거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배당투자 활성화로 기업의 배당성향이 제고되면 단기 매매차익 목적의 투자 대신 장기 배당투자가 활성화돼 증시 변동성이 완화되는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이번 배당절차 개선은 배당락에 관한 정보가 주가에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국제적 정합성에 맞는 변화임은 물론 주식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변화"라면서도 "3월 중하순에 주주총회가 집중되어 주주들의 주주권 행사가 용이하지 않은 문제 등은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근본적인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정기주주총회를 4월 이후에 개최하는 방안을 포함해 지속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