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추진하던 일반공모 유상증자(주식을 신규 발행해 자본금을 늘리는 것)를 전격 철회했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라고 제동을 건 지 일주일 만이다.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용 성격이 짙은 유상증자를 철회하면서 영풍·MBK파트너스(MBK) 측이 승기를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13일 임시 이사회에서 유상증자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상증자 발표로 혼란을 초래했다며 사과했다.
최 회장은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충분히 사전에 기존 주주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고 거듭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사내이사직 유지에 관한 언급은 별도로 하지 않았다.
고려아연은 이날 분기 배당 도입을 추진하는 등 주주 친화·환원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 회장은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믿고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무엇이 옳은 길인지 합리적 선택해오신 주주분들과 함께 다가올 주주총회에서 승리해 회사를 지켜내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 안팎에서 비판이 잇따르고 금융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결국 유상증자를 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고려아연은 전 거래일보다 14.10% 내린 98만1000원에 장을 마쳤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이 무산되면서 경영권 향배는 이르면 연말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영풍·MBK 측은 공개매수 종료 이후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 1.36%를 추가로 취득해 약 39.83%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반면 최 회장 측은 우군으로 분류된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보유 중이던 고려아연 지분 0.8%를 모두 처분하면서 약 34.65%(우호 지분 포함)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양측의 지분 격차가 약 5%포인트 차이가 나는 만큼 최 회장 측은 우호지분 추가 확보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 설득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풍·MBK 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유상증자가)애당초 진행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본시장에 큰 혼란을 끼치고 기존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후에야 뒤늦게 철회된 점에 대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안타까움을 가진다”고 밝혔다. 이어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신규 이사들을 선임해 유명무실한 고려아연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하고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투명한 거버넌스 체제를 확립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