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나의 사막

2025-01-20

내가 몰래 숨겨 가져온 사막의 모래

눈을 감고 들어가면, 훤히

바람의 무늬며 몸의 곡선, 생각의 속살

열어 보이는 나의 애인

고운 모래의 능선 아래 숨어 있는

우물, 낙타풀, 사막의 장미도 찾을 수 있고

모래무덤에 파묻힌 수많은 병사들의

칼 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들의 아름다움이거나 섧은 마음에

슬몃 별빛 마냥 닿아 보다가

사막에 사는 쇠양, 호양목, 홍류나무를 그리워하다가

낙타의 육봉肉峰에 새겨진 물의 나침반을 읽다가

책상에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든다

목마름에 지쳐 눈을 뜨면, 그리운 것은 바로 눈앞에 있다

사막에서 돌아와 나는 매일 사막에 산다

◇한이나=1994년 ‘현대시학’ 발표로 활동시작. 청주 교육대학 졸업. 시집 ‘물빛 식탁’, ‘플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유리 자화상’등 7권, 시선집 ‘알맞은 그늘이 내가 될 때’가 있으며, 내륙문학상, 서울문예상 대상, 한국시문학상 외.

<해설> 이 시의 중심 소재는 사막에서 몰래 가져온 “모래”다. 어쩌면 그런 모래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건, 아마도 그가 시인이었기 때문이리라. 사막에서 모래를 처음 만났을 때 시인은 이미 사막 일부를 모래를 통해 읽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의 무늬며 몸의 곡선, 생각의 속살까지 열어 보이는, 나의 애인을 만난 듯 지금 그 모래를 앞에 두고 우물, 낙타풀, 사막의 장미도 찾아내고 파묻힌 수많은 병사들의 칼 가는 소리도 듣는다. 이만하면 책상머리의 시인이 아니라 발로, 몸으로 찾아가 겪어낸 감정을 시인은 시로 쓰는, 그런 시인의 시를 대하는 진정성이 읽힌다. 그렇게 모래를 데려온 이후로 사막에서는 돌아왔지만 매일 사막에 산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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