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의 로컬리즘] 한국의 오늘은 인류의 미래?

2025-01-07

질병과 전쟁 그리고 기근…. 상상에서조차 떠올리기 싫은 단어다. 수천년 인류 역사의 굴곡진 그늘에 항상 등장하는 ‘절대 공포’로 불린다. 평생 셋을 겪지 않은 인류라면 천운을 타고난 운명에 가깝다. 셋은 인구 증감과도 맞닿아 있다. 인구 과잉과 자원 부족을 기하급수와 산술급수로 풀어낸 맬서스는 인구가 식량 생산량을 넘어서면 질병·전쟁·기근이 생겨 임계점을 맞은 후 균형점을 찾는다고 했다. 이후 맬서스의 ‘3대 함정(traps)’은 인구의 과잉위기를 통제하는 수급 매칭의 기제로 이해됐다. 정설은 아니지만 과거 묘사는 맞았는데, 미래 전망은 거의 빗나갔다. 인류의 반복된 기술 발전이 인구 부양과 출산 증가에 기여한 까닭이다.

3대 함정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덮어놓고 낳으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는 산아제한기 슬로건의 탄생 근거다. 인구 증가가 후생 감소를 뜻하니 적게 낳자는 가족계획을 뒷받침했다. 그 덕분에 출산율은 급락했다. 0.72명(2023년)은 그 연장선이다. 맬서스가 현대 한국을 봤다면 둘 중 하나로 반응할 터다. 특이 사례답게 지적 욕망을 부추기거나 혹은 연구를 포기하거나. 그만큼 세계신기록의 인구통계를 경신하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 놀랍다. 상상 초월인 ‘로컬 전출→수도 전입’의 도농 격차가 일례다. 이는 질병·전쟁·기근이 없는데도 총인구가 줄어드는, 맬서스가 가정 못한 한국형 인구 동태의 특이 결과다.

출생 감소는 전지구적 일반 현상에 가깝다. 한국이 맨 앞에서 낯설되 거세게 증명해준 것에 불과하다. 인구 증가의 인류 예측과 달리 3대 함정이 없지만, 인구 감소를 반복·실현한 한국이 퍼스트펭귄이 된 것이다. 실제 한국 로컬의 현재는 인류 미래의 내일로 비유된다. 인류 소멸의 작지만 거대한 발걸음이 한국 로컬에 흘러넘친다. 합리적인 농산어촌의 개인 결정이 ‘저밀도·고출생→고밀도·저출생’의 지속불능형 사회비용을 낳은 결과다. 한·중·일의 총원 감소도 정황 증거다. 고학력·대기업을 좇는 향(向)수도화의 인구 이동이 근원 인자란 얘기다. 이것부터 손대는 게 옳고도 좋다.

한국의 로컬 복원은 인류를 인구 감소에서 구해낼 일종의 테스트베드다. 선진국은 한국 로컬에서 그들의 미래 풍경을 강하게 오버랩한다. 저성장·재정난의 선진국병을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인구 변화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저출생·초고령은 인구 감소와 이음동의어인 까닭이다. 인구문제가 심각해진 일부 해외 로컬에선 한국적 기시감마저 목격된다. 소멸을 향해 치닫는 한계취락일수록 한국적 판박이는 손쉽게 볼 수 있다. 좋은 걸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연유는 없다. 인류 최대의 재앙 사태를 한국 로컬의 혁신 실험이 반전시킨다면 한강의 기적을 뒤이을 2.0버전과 같다. 어차피 0.72명의 한국 사회에 벤치마킹은 없다. 철지난 이론보다 눈앞의 대응이 먼저다.

방향은 정해졌다. 책상물림의 당위·지향적인 그림보다 현장 중심의 현실·효과적인 행동이 중요하다. 질병·전쟁·기근이 없어도 인구 감소를 반복하는 농산어촌의 로컬 공간을 지속가능한 행복 무대로 전환하는 혁신 실험은 결국 인류를 인구 위기에서 구해낼 절체절명의 해결 미션이다. ‘인구 집중→문명 강화→밀집 발생→감염 등장→인구 멸종→내성 대응→문명 증대→지배 인구’의 시나리오다. 한국 로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강력해진 컨센서스가 요구된다. 어차피 인구는 준다. 줄어도 더 잘사는 로컬 실현에 인류 미래는 결정될 것이다. 애정과 열의로 로컬 재생의 한걸음에 주목할 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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