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 칼럼니스트
![](https://www.jejunews.com/news/photo/202502/2216276_244192_1422.jpg)
그리 못 생긴 것 같진 않다.
좁은 이마에 두 볼에 골짝이 파인 게 되다 만 분화구 산기슭 자드락이다. 우묵하게 들어가 그늘졌으면서 사유에 골몰할 때는 두 눈이 그윽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낯선 사물을 대할 때 그런다. 콧구멍이 숨 쉬는 데 알맞게 크긴 하나 빗물이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복코는 아니라 한다. 귀는 쫑긋하게 붙어 있고, 다문 입술의 가장자리는 선명해 보이나 특색이 있어 보이진 않다. 이왕지사 이목구비가 준수하다는 소리를 듣긴 글렀다.
타고난 얼굴인데 나 자신 불만은 표정이 어둡다는 것. 두루춘풍이 아니더라도 환한 얼굴을 내걸고 다녔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것만 같다.
근엄한 데다 때때로 여린 정서가 번져 쓸쓸한 표정이다. 자칫 속 다르고 겉 달라 오해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안면이 너무 차갑고 딱딱해 보일 때도 있는 모양새다. 훈훈한 기운이 감돌면 낙천적으로 보여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 어린 시절의 가난이 세월 속에 그대로 고여 있는 건지 애써도 바꾸지 못하니 딱한 노릇이다.
활짝 웃어 보았으면 하고 늘 아쉬움을 담고 다니는 얼굴, 노상 끼어 있는 구름이 열린 틈으로 청잣빛 푸른 하늘이 그리운 얼굴, 때로는 울긋불긋 삶에 지친 기색과 고뇌의 자국이 묻어나는, 좀 색다른 얼굴 - 그게 내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면서도 한순간의 기분이나 감정의 기복을 여과 없이 노정시켜버린다.
‘못마땅하다.’, ‘지금 기분이 몹시 상해 있다.’ ‘억울하다.’ 미묘한 감정 표현이 실시간으로 얼굴에 둥둥 떠다닌다. 별로 절박한 것도 아닌데 미세한 자극에도 예민한 걸 보면 살가죽이 두껍지 못한 게 맞다. 웬만한 것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반반한 얼굴이 아니다. 타고난 심성이나 성정은 고치지 못하니 그럴 것이다. 제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마는 솔직 담백한 얼굴, 그러니 남을 속이거나 속셈을 두루뭉실 감출 수 있는 후안이 못 된다. 탈 쓴 사람을 혐오해 그 결과로 호불호의 표정이 신랄하게 연출되는 내 딴엔 의로운 자의 표상이라 한다.
이따금 이변이 일어나기도 한다. 꽃이 핀다고 숨죽였다가 갓 피어난 꽃 앞에 활짝 웃는 천진함이 깃드는 자락,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에 환호하는 아이 같은 기쁨이 살포시 퍼지기도 하는 그런 시선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누선을 자극하는 글을 읽으며 울어버리는 감정이입의 화신, 그리움에 목마를 때면 가랑잎처럼 바삭거리며 말라버리는 가을 들판, 나다니지 않아서 좋은 산사에 곁을 내어 쓰고 싶던 글을 쓰는 은자의 거처. 이게 내 얼굴에 대한 나름의 은유다.
날마다 낯 씻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머리가 흰 것만이 아니다. 어느 한구석 윤기라곤 찾아보지 못한다. 군데군데 잔주름이 일렁이는 위로 물안개가 뒤덮고 있다. 나이 듦의 징후라 하나 가슴 아리다.
나는 지금 여든의 경계에 와 있다. 삶의 완성은 꿈꾸지만, 달인의 경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무애의 자유인이고 싶을 뿐. 원컨대 내 얼굴에 나이의 그늘이나마 묻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