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트 서바이벌 예능 MBN ‘현역가왕2’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지난 2월 종영했다. 인기가 높았던 만큼 논란도 있었다. 공정성 논란에 휘말렸고, 제작진이 경찰에 고발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경연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공정성 논란은 반복적으로 발생하지만, 논란들 중엔 다소 과도한 비난도 있다. 그렇다면 공정성 관점에서 허용되지 않는 연출과 방송의 재미와 완성도를 위한 연출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경연 프로그램에서 미리 결과를 정해 놓고 경쟁을 가장하거나, 투표 결과나 심사 점수를 제작진이 임의로 조작하는 행위는 명백히 금지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연출적 개입이 아니라 형법상 업무방해죄(제314조) 또는 사기죄(제347조)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로 법원은 Mnet ‘프로듀스’시리즈에서 시청자의 유료 문자 투표가 조작되었고 그 조작으로 인해 일부 연습생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 등을 들어 제작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의 룰과 연출 방식은 제작진의 재량에 속하는 영역이다. 경연의 평가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기 때문에, 심사위원 점수만으로 결과를 결정하면 개별 심사위원의 취향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시청자 투표로만 정하면 인기와 팬덤의 크기가 실력보다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이 심사위원 평가와 시청자 투표를 병행하거나, 새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하며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공정성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연출적 개입을 배제하면 프로그램이 단조로워질 위험이 있으므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화젯거리 등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연출적 개입은 필수적이다.
‘슈퍼스타K’(Mnet), ‘K팝스타’(SBS), ‘쇼미더머니’(Mnet) 같은 프로그램이 단순한 실력 대결이 아니라 참가자의 성장 과정과 배경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인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공정성을 해치는 조작이 아니라, 참가자 개개인의 서사를 살려 경쟁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연출 방식에 가깝다. 모든 참가자에게 동일한 분량을 배정하고 서사를 최소화하는 방식은 프로그램의 재미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고, 실제로 일부 경연 프로그램은 공정성을 강조하며 감정적인 서사를 배제한 결과, 무대 퍼포먼스의 나열에 그치며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서도 연출과 공정성의 기준은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데뷔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기회이므로 공정성이 특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반면 이미 현역으로 활동 중인 가수들이 출연하는 ‘현역가왕2’ 같은 프로그램은 성격이 다르다.
이 프로그램은 현역 가수들의 경연을 통해 ‘한일가왕전’ 출연자를 선발한다는 컨셉을 활용하여, 가수들이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새로운 무대 기회를 제공했다. 이 경우 경연의 결과가 참가자의 미래를 직접 결정한다기보다는, 시청자의 몰입도와 집중도를 높이는 연출 방식의 하나로 서바이벌 경쟁이라는 요소를 활용한 것이므로 지나친 공정성 논란은 연출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
결과를 조작하는 행위는 당연히 금지되어야 하지만, 연출 방식까지 획일적으로 제한하면 프로그램의 개성과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 과거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특정 참가자에게 과도한 분량을 배정해 반감을 샀지만, 반대로 모든 참가자를 똑같이 다루며 단조로운 연출을 한 프로그램 역시 시청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국 시청자들은 공정성과 재미 중 하나만을 원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공정한 경쟁 속에서도 감동과 몰입을 유도하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방송사는 연출과 공정성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며, 시청자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시청자들도 뻔한 경연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응원을 보내줄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