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대선 앞두고 1년 만에 시위 재개
“21년간 요구 무시돼”, “불법 행위 안 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1일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하면서 시위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하고 있다. 강한 방식이 아니면 사회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한계 속에서 장애인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연대론과,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방식으로는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는 비판론이 공존한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부터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을 중심으로 휠체어를 열차 안에 고정시켜 출발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장애인 이동권과 예산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6∙3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중단했던 지하철 시위를 재개한 걸로 보인다.

◆노∙동∙강 직장인 출근길 발 동동
이날 오전 지하철 4호선 열차는 평소 10분이면 통과할 역들을 40분 이상 걸려 이동했다. 시위 정보를 사전에 접하지 못해 평소대로 나섰던 직장인들은 제 시간에 출근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전장연이 오전 8시부터 4호선 혜화역 동대문 방면 승강장에서 제6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에 나서면서였다. 지하철에 휠체어를 걸기 시작한 전장연 측 참가자와 이들을 막아선 서울교통공사 직원, 취재진이 뒤엉켜 혜화역 승강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해당 열차와 뒤따르던 열차 모두 이동을 중단한 채 대기했다.
공사 측은 오전 8시50분쯤부터 혜화역을 무정차 통과시켰지만 이미 출근 시간대가 한참 지난 뒤였다. 4호선 오남역과 선바위역에서도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가 열려 이날 오전 8시부터 35분 동안 열차가 운행하지 못했다.

이들은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각 정당에 정책 요구안을 전달한 뒤 오후 1시 인근 이룸센터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주최하는 집중결의대회에 참여했다.
서울시는 이날 불법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 손실 피해액을 2100만원으로 추정됐다. 시는 형사고발과 함께 손해배상∙업무방해 혐의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한국, 장애인 권리보장 약한 건 현실
이 단체가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시위에 나선 데는 장애인의 권리보장에 소극적인 사회 문화가 있다.
전장연은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기본소득당∙녹색당∙사회민주당∙정의당∙진보당 등 6개 정당과 국민의힘 안철수·유정복·한동훈 대선 경선 후보에게 장애인권리요구안을 전달했다.
요구안에는 △이동권(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제정, 휠체어 접근버스 100% 의무화 등) △교육권(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등) △노동권(권리중심공공일자리지원특별법 제정 등) △탈시설(장애인거주시설 단계적 시설폐쇄 5개년 계획 수립 등) △권리 보장(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등) △건강권 △국제협약 이행 등 6가지 내용이 담겼다.
이에 앞서 지난 21대 국회에서 일부 정치인들을 움직여 장애인권리보장법 등 ‘제정안’과 발달장애인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발의했지만, 하나도 통과되지 못한 채 22대 국회 들어 폐기됐다. 이 중 일부만 다시 발의된 상태다.
2022년 4월 민주당은 전장연 요구에 응하며 같은 달 국회 본회의에서 4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치적 공방 끝에 결국 무산됐다.
◆문제는 ‘예산’…소극적인 정치권
문제는 예산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각종 권리를 보장하려면 국가의 예산, 즉 돈이 필요하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지원하려면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하고, 하루 활동지원을 최대 24시간으로 늘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2022년 탈시설 예산으로 24억원이 편성됐지만, 전장연 측에서 요구한 예산은 788억원으로 간극이 매우 컸다.

우리나라가 장애인 등 약자의 권리 보호에 소극적인 건 사실이다. 미국와 유럽 주요국은 이들이 요구한 7개 법안을 진작에 도입한 상태다. 미국은 1990년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ADA)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고용, 공공 서비스, 교통, 공공장소 접근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에서 ‘장애인교육법’(IDEA)이 제정된 건 1975년이었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지하철 시위를 중단하고) 1년을 기다리며 장애인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국회에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예산을 반영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했음에도 1건도 통과시키지 않았다”며 “우리는 다시 출근길 지하철을 타겠다”고 밝혔다.
그는 2022년 4월 jtbc 썰전 라이브에서 진행된 당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의 일대일 토론에서 “이러한 시위는 21년 간 장애인 권리 요구가 무시되어 온 현실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지하철 시위는 단순히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라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 회피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행위 통한 주장 옳지 않아”
그러나 방식이 잘못됐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개혁신당 대선 후보인 이준석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정책 요구를 할 자유는 있지만 수십만 명의 일상과 생계를 볼모로 삼을 권리는 없다”며 “공공을 인질로 잡은 투쟁은 연대가 아니라 인질극이다. 정의의 탈을 썼다 해도 방법이 그릇되면 명분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전장연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처벌의 대상”이라며 “‘전장연 방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과는 아무상관 없는 ‘탈시설’까지 주장하면서 지하철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시민들의 발을 묶는 불법적 행위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떼법으로 돌아가는 한국사회를 바꿔야 한다. ‘약자는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틀렸다. 그들은 치외법권에서 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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