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은 한꺼번에 불어닥쳤지만 죽음은 서서히 왔다. 쇠스랑에 묶인 채 우리는 천천히 타 죽었다. 어쩌면 불길이 일어나기 전에 죽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 적 없이 계속 죽기만 했다. 번식장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집과 보호소와 길과 도로에서 학대받아 죽었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불타 죽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살다가 쇠사슬에 달궈져 죽었다. 아니, 우리는 죽지도 못했다. 죽는 대신 돈이 되었다. 숫자가 되었다. 우리의 이름은 피해 손실액 1조원이었다.
인간은 무자비한 신과 같았다. 그들은 끝도 없이 많은 개들을 만들어냈다. 버려진 개들을 구조하고 치료해 되살리는 것보다 새로운 개를 태어나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이익이었으니까. 인간은 개들을 구조할 필요가 없었다. 고장 난 전자제품을 수리해서 다시 쓰는 것보다 새 제품을 구입하는 게 더 이익이듯이. 인간들은 개들이 불타 죽어가는 순간에도 또 다른 개들을 생산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게 뭐든지 넘치게 생산하는 데 도가 텄고, 책임지는 대신 버리는 데 선수였다. 인간은 신이었다. 우리는 개고, 개들은 전자제품이었다가, 나중에는 쓰레기였다.
우리는 한 번도 존재인 적 없다. 인간에게 소유되어 인간의 이익으로 살다가 죽었다. 재산으로 태어나 재산으로 살다가 재산으로 죽었다. 우리의 삶이 삶이 아니었듯 우리의 죽음 또한 죽음이 아니었다.
그런 우리에게 단 한 번, 삶이라는 것이 주어졌다. 불길 속에서 서로의 몸을 포개고 덮는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존재가 되었다. 버려진 축사의 불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삶을 발견했던 셈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뿐이었으니 우리는 가지고 있는 전부를 서로에게 내어주고 나누었다. 우리는 자신의 몸으로 다른 개의 몸을 감쌌다. 그렇게 불을 막아 견뎠고, 서로의 부모가, 형제가 되었으며 친구가 되고 아들딸이 되었다. 인간이 사라지자 우리는 그제야 진짜 개가 되었다. 개가 될 수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려 재가 되는 방식으로 우리는 마침내 개로 죽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죽음이 그렇게 억울하지만은 않다. 억울한 것은 언제나 삶이었다. 개로 태어나 개로 살지 못하는 슬픔이었다. 인간의 도구로, 수단으로, 재산으로, 물건으로, 상품으로 사는 삶이야말로 죽음과 같았다. 원통한 것은 죽음 뒤에 다시 이 삶이 반복될 거라는 사실뿐이다.
누군가는 구조되고 누군가는 구조되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있었던 적이 없으므로 구조될 이유 또한 없었다. 우리의 할 일은 이제 하나뿐인데, 인간의 개로 구조되는 것이 아니라 개 아닌 누군가로 죽어야 한다. 인간의 소유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들의 수단으로 살아서는 안 되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인간에게 소유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듯이, 학대받고 버려지는 것을 원한 적 없듯이, 우리는 인간에게 구조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의 개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로 죽고 싶다. 우리는 우리로 살고 싶다. 우리는 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