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는 자유, 넘치는 유머”…조선민화에 매혹된 日 ‘인간국보’ [일본 속 우리문화재]

2024-09-21

◆조선 여행 길에 맞은 인생의 전기

‘인간국보’(人間國寶), 무게감이 막중한 표현이다. 일본에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된 사람들을 이르는 통칭이다. 근거 법률인 문화재보호법에 정식으로 규정된 단어는 아니다. 지금까지 383명이 인간국보의 타이틀을 가졌다고 한다. “예술상 혹은 역사상 높은 가치를 가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를 향한 일본 사회의 존경을 유난스러움까지 느껴지는 명칭에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세리자와 게이스케(芹沢銈介·1895∼1984)는 1956년 전통 염직 분야의 인간국보에 올랐다. 1976년 프랑스 정부의 초청을 받아 파리 그랑 팔레 미술관에서 개인전도 열었다고 하니 국제적인 명성도 가졌다.

그의 고향 시즈오카시에 ‘시립 세리자와 게이스케 미술관’(세리자와 미술관)이 있다. 건물 내·외부는 수수하고, 우아하다. 깊은 애정을 요란떨지 않고 드러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인근에 야요이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도로(登呂) 유적과 도로박물관이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즐길 수 있다.

미술관 입구에 걸린 세리자와의 약력에 우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1927년/32세/조선 여행 중 선상에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의 도(道)’를 읽고 감동해 생애의 일대 전기를 맞았다.”

◆작품의 모티프가 된 조선 공예품

세리자와는 3번 조선을 찾았다. 1927년이 첫번째 여행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 지식인으로는 드물게 조선미에 깊은 찬사를 보낸 야나기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야나기가 1924년 서울 경복궁에 개관한 조선민족미술관을 방문하고, 경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찾았다. 이 여행으로 골동품 수집의 즐거움도 알게 됐다. 두번째 방문은 1929년이었다. 이해 경복궁에서는 열린 ‘조선박람회’에 참가한 시즈오카현 차업(茶業)조합연합회의소 부스 설계를 맡아 오게 된 출장이었다. 1933년 세번째 방문은 중국 다롄에서 열린 개인전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이뤄졌다.

세리자와 미술관은 이 세번의 여행을 이렇게 정리했다.

“3번 조선에 건너가 풍물을 접하고 강한 감동을 받았다. 그 여행을 계기로 구입한 조선의 물건이 꽤 있었던 것 같지만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소실됐다. 하지만 전후 수집을 재개해 민화, 도자기를 비롯해 목공예품, 가구, 서적, 가면, 완구 등을 모았고, 그것이 염색 작품의 주요한 모티프가 됐다.”

세리자와는 특히 민화를 애정했다. 민화 중에서도 문자도, 문방도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문자 안에 사람이나 동·식물을 그리고,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 표현 등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했다.

세리자와 자신의 심미안에 따라 조선미에 이끌린 것이겠으나 야나기와의 깊은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세리자와는 야나기를 스승으로 여겼고, 야나기는 세리자와를 “천부의 재능을 가졌다”며 아꼈다. 야나기가 설립한 도쿄 일본민예관에서 ‘탄생 130년 세리자와 게이스케의 세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리자와가 1958년에 야나기에게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서간(書簡)은 전시품 중 하나다. 글과 함께 10점의 공예품을 그려놓았는데 조선의 필통, 나전함, 소반이 포함돼 있다. 조선미에 대한 공명이 두 사람의 인연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품이다.

◆5번의 조선 관련 전시회, 전면에는 민화

세리자와 미술관 전체 소장품은 약 4500점이라고 한다. 한반도와 관련된 것이 280점 정도다. 도자기부터 목공예품, 가구, 서적, 완구 등 여러가지다. 이 중 세리자와가 1953년 이후 수집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민화가 76점이다. 4분의 1이 조금 넘으니 비중이 크다. 문자도(30점), 문방도(16점), 화조도(14점) 등 주제가 다양해 나름의 계통을 세우고 골고루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세리자와 미술관은 “300점 가까운 세리자와의 회화 컬렉션 중에서도 (조선민화는) 중요한 축”이라고 설명했다.

세리자와 미술관의 조선 관련 전시회에서도 민화의 활용도가 높다.

세리자와 미술관이 홈페이지에 소개한 전시회 정보를 보면 1981년 개관기념전을 시작으로 현재 진행 중인 ‘하루하루를 물들이다’전까지 133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 중 제목에 조선시대 유물 전시회임을 표시한 것이 5번 있었다. 첫번째가 1981년 ‘이조(李朝)의 세계-민화·서적·목공품·도자기 등-’전이었다. 민화를 전면에 내세운 건 33회(1992) ‘신비한 회화-이조민화의 세계-’, 73회(2006) ‘조선의 민화’, 104회(2015) ‘삶 속의 문자-세리자와 게이스케의 문자도와 조선민화’ 3건이다. 조선민화와 그것에 영향을 받은 세리자와의 작품을 동시에 전시하는 방식도 여러번 사용했다.

조선민화가 세리자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지점, 미술관이 보여주려는 조선민화의 특징은 ‘넘쳐나는 유머’다. 미술관은 “조선민화를 분류하면 높은 회화적 기량에 기초한 것도 있다”면서도 “세리자와가 수집한 것은 야취(野趣)가 넘치는 소박함을 가지고, 보고 있으면 즐겁고 유머가 있는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2006년 ‘조선의 민화’전에서는 “어느 것이라도 한없는 자유와 유머가 넘쳐 난다”고 소개했다.

시즈오카=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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