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사학 구조개선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도 여야가 재차 발의해 곧 교육위원회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넘길 예정이다. 교육위 여야 의원들이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상황이다. 이를 바람직한 여야 협치의 사례라고 이해할 분들도 많겠지만, 이 법안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협치 차원의 입법 활동에 크게 미달한다.
우선 법안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5월 17일 21대 국회 교육위원회가 개최한 공청회가 사회적 공론화로는 거의 유일하다.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공청회 발언은 대체로 법안의 심각한 문제를 따지는 쪽이었다.
경영난 사립대의 폐교 쉬워지며
해산장려금 노린 폐교 늘 수 있어
고등교육 투자로 대학 정비해야
그러나 지금은 여야를 막론하고 찬성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대학 입학 연령인 만 18세 인구는 앞으로 44만~47만 명을 오르내리다가 2035년부터 다시 급감해 2040년부터는 26만 명 이하로 떨어진다. 대학 진학률을 70%로 잡아도 입학 예상 숫자는 18만 명에 불과하다. 내년 대학 입학 정원 34만 명을 15년 안에 절반 이하로 감축하는 일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정해진 미래’다. 학령인구 급감과 등록금 동결 등으로 운영이 힘든 사립대학들의 퇴로를 열어주는 법안 추진은 겉보기에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는 대학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진행되는 논의로, 질병의 원인을 외면한 대증요법이다.
한계 사학이 신속하게 문을 닫을 법적 근거를 마련해 많은 대학이 없어져도 우리의 대학 생태계가 자동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열악한 지방 대학 위주로 폐교가 되어 ‘지역 소멸’의 문제가 악화하고, 수도권 집중 심화 탓에 청년들이 체감하는 경쟁 압력 상승에 따른 ‘인구절벽’의 미래는 더욱 굳어진다.
우리 대학 생태계는 한계 사학이 많은 현실도 문제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고등교육 투자 부족이다. 당장 OECD 평균이라도 달성하려면 지금보다 연 5조~6조원 이상 늘려야 한다.
한국 대학에 거품이 많다는 통념(물론 학부 입학 정원은 거품이 넘친다)이 정확한지를 보려면 2020년 12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청년층의 교육 이수 현황과 시사점’ 자료를 볼 필요가 있다. 자료에 따르면 학문 분야별 핵심 연구인력에 해당하는 석·박사급 이수율은 3%에 불과하여 조사 대상 44개국 중 33위에 그쳤다. 이는 OECD 국가의 석·박사급 이수율 평균 15%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개발도상국의 추격형 모델에서 선진국의 선도형 모델로 도약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국제 경쟁의 살벌한 현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만약 한계 사학 폐교를 위해 논란거리인 학교 해산 장려금 조항까지 넣어 법을 통과시킨다면 엉뚱한 결과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노른자위 토지와 건물을 가지고 있어 대학을 제대로 운영할 여력이 있는 사학들이 잔여 재산 중 받게 될 해산 장려금을 노리고 섣부른 폐교를 감행할 수 있다.
현재 우리 대학 생태계의 참담한 현실은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 개혁에서 씨앗이 뿌려졌다. 5·31 개혁은 군부독재 시절의 교육체제와 문화를 일신하는 긍정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고등교육에 관한 한 치명적 과오를 범했다. 이미 출생률 감소가 예견되는 시점에서 최소 기준만 채우면 대학 설립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시장주의적 ‘대학 설립 준칙주의’ 도입으로 대학을 마구 늘렸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대학 생태계가 망가졌다. 당시 교육부 간부들도 반대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우리는 기후-생태 위기, 기존 세계질서 붕괴, 디지털 대전환 등 엄청난 도전에 부딪히고 있다. 먼 내일을 내다보며 고등교육 투자를 늘려 대학 체제를 정비하고 국내는 물론이고 개발도상국의 뛰어난 인재까지 영입하여 잘 길러내야 한다. 대학 생태계 살리기는 시장이 아니라 국회와 정부의 국가 정책이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한 협치가 위기에 빠진 정치를 복원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사학 구조개선 법안은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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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