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차 은행원에서 호텔리어로 전직…"스트레스 덜고 웃으면서 일해요"

2025-05-23

오랜 기간 한 직장에서 일했다면 다른 직종으로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손에 익은 일을 접어두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에는 생각 이상의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막상 새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제대로 안착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벗어나 ‘인생 2막’을 설계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보니 이른 은퇴를 얘기하는 것도 마음 편하지는 않다.

적지 않은 50대 중장년들이 이런 고민을 겪는 가운데, 새로운 일에 자신 있게 도전해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이도 있다. 30여 년을 은행원으로 살다가 호텔리어로 전직한 박정원(56)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은행원으로 일하던 때보다, 지금 실질적으로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재미를 느끼며 삽니다.”

박 씨는 1988년 상고를 나와 한 은행에 입사해 올 1월 퇴직할 때까지 37년을 줄곧 은행원으로 지냈다. 정년은 60세지만, 임금피크제 적용을 앞두고 다소 일찍 퇴직을 결심한 것. 이후 새로운 일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주특기를 살릴 수 있는 텔레마케터 등에 지원도 해봤고 각종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도 등록했지만, 연락은 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길에서 본 서울중장년내일센터의 포스터에 시선이 꽂혔다. 호텔 종사자 양성 과정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퇴직한 지 한 달쯤 지나서였지요. 한 달가량 쉬어보니 일을 안 하는 게 더 힘들더군요. 은행원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기도 어렵다 보니 ‘소일거리라도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이 과정은 호텔리어로 취업을 원하는 중장년에게 교육과 실습 기회, 면접까지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서울중장년내일센터와 서울 중구 등이 협업해 기획했다. 박 씨는 2월 중순 서류를 접수했고, 3월 서류심사에 합격했다. 교육과 실습은 호텔리어라는 직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호텔리어 출신 강사로부터 이론 교육을 받은 뒤 1주일간 PJ호텔에서 침구 정리, 연회장 세팅, 응급상황 대응 등 각종 실습 과정에 참여했다. 30여 년을 은행에서만 일했던 그에게 이런 생활은 의외로 큰 즐거움을 안겨줬다. “은행 다닐 때 받았던 딱딱한 교육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교육이라 더 신선하고 즐겁더라고요.”

교육 다음은 면접이었다. 중장년내일센터에서 열린 ‘구인·구직 만남의 날’에서 만난 호텔 업계 관계자들은 박 씨에게 “은행원으로 긴 시간을 일했는데 호텔리어 업무를 맡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 씨는 “은행에서 고객을 관리하듯이 호텔 물품과 손님을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답했다. 이틀 뒤, 그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민기정 서울중장년내일센터 소장은 “지난 과정 때도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싣고 진지하게 면접에 임했던 분이 결국 합격했다”며 “경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요즘 중구 로얄호텔로 출근한다. 호텔방의 시트와 이불, 수건 등 각종 린넨 물품이 모자라지 않도록 관리하는 하우스키퍼 업무를 맡고 있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세탁물 누락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호텔의 층마다 부족한 물품을 확인하다 보면 금세 퇴근 시간인 오후 5시가 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들 덕분에 웃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룸메이드 여사님, 하우스키퍼 선배님 모두 연배와 경력이 많으셔서 많이 도움 받고 있어요.”

박 씨는 은행에 다닐 때 실적 압박 등으로 스트레스를 자주 받곤 했다. 지금은 이전처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일은 별로 없다. 외려 손발을 움직이며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면서 큰 만족을 느낀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박 씨는 “호텔 소방안전관리자로의 전직을 준비하고 있다”며 ”최근 소방안전관리자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재취업도 비교적 수월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낮에는 호텔리어로 근무하고 저녁에는 교육원에 가서 자격증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수학적인 계산도 필요하고 전기 회선에 대한 이해도 요구돼 쉽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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