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아군(我軍)과 명군(明軍)이 모두 통곡하였으니 마치 자기 부모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만 같았다.”(류성룡, 『징비록』 무술년 10월)
임진왜란 당시에도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구국의 영웅이었지만 죽음 직후부터 각 시대는 쉬지 않고 그를 불러냈다. 17세기 중엽 병자호란 참패 후 조선 왕실은 아산 현충사에 사액을 내려 이순신을 국가적으로 추모하기 시작했고, 특히 정조는 직접 신도비명(神道碑銘, 행적을 공식적으로 기리는 비문)을 지었다. 일제강점기엔 현충사 중건을 위한 전국적인 성금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순신을 기념하는 화폐·우표 발행은 남·북한이 너나없었다.



아동용 위인전으로, 드라마 및 천만 영화로, 세종로 동상으로 익숙한 이순신을 실제 사료와 유품을 통해 만나는 역대 최대 규모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28일~2026년 3월3일)이다. 좀처럼 대여가 까다로운 충무공 종가 유물 20건 34점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서울 나들이하는 등 총 258건 369점이 한데 모였다. 27일 언론공개회에서 유홍준 관장은 “장군의 일대기에 대한 정본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꾸민 전시”라고 소개했다.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의 935㎡ 공간(약 282평)을 빈틈없이 채운 전시는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이순신이라는 불세출의 리더를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게 짜였다. 친필로 날마다 쓴 『난중일기』가 꼼꼼하면서 자애로웠던 공의 사적 면모를 보여준다면, 그가 국왕에게 올린 장계인 『임진장초』에는 전략가이자 관리자로서의 책임감이 두드러진다. 이밖에 이순신이 보낸 편지를 묶은 『서간첩』, 이순신의 필체로 공의 각오를 새긴 장검, 류성룡의 임진왜란 회고록 『징비록』, 조선 전기의 해안 방어와 수군 제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조선방역지도’ 등을 만난다. 이들 6건15점은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다.
당대 전투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도 모였다. 땅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출토된 천자총통·지자총통·현자총통을 비롯해 류성룡이 입었던 갑주(갑옷 잔편과 투구) 등 16세기 무기 체계가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현재 실물이 전하지 않는 거북선의 경우 영상 제작물을 통해 운용 이해를 도왔다.
참혹한 희생을 증언하는 ‘유골 유물’도 나왔다. 지난 2005~2006년 동래읍성 해자(垓字) 발굴 조사 당시 기와편 등과 함께 출토된 인골과 무기류로 1592년 동래성 전투 흔적으로 추정된다. 총, 칼, 창에 의해 곳곳이 뚫린 두개골들이 전란 기록화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 등과 함께 비극의 역사를 증언한다.


전쟁의 상대였던 일본 쪽 유물도 상당수 건너왔다. 일본 다이묘(大名)였던 다치바나 무네시게 가문의 투구와 창, 금박장식투구 등은 국내 처음 선보인다.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이 소장해온 금채 ‘울산왜성전투도’ 병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초상화와 목상 등은 일본에서 임진왜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사료다.
6폭 병풍 2개가 한 세트인 정유재란 기록화 ‘정왜기공도병(征倭紀功圖屛)’은 사상 처음으로 완질로 만나볼 수 있다. 애초 명군의 종군화가가 그린 것을 일본 화가가 후대에 베껴 제작한 병풍그림으로, 전반부는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에, 후반부(10번 도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가 이번에 처음 한자리에 놓였다. 유새롬 학예사는 “조선에서 벌어진 임진왜란에서 명나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걸 일본 화풍으로 재창작한, 독특한 동아시아 맥락의 유물”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39곳, 일본 5곳, 스웨덴 1곳 등 총 45개 기관(개인 포함)의 협조로 이뤄진 이번 전시 곳곳엔 『난중일기』 등에서 발췌한 충무공의 어록이 무게감을 더한다. 장검에 새긴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두려워 떨고(三尺誓天 山河動色)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一揮掃蕩 血染山河)” 등의 문구가 서늘한 가운데 그의 입술을 적셨을지 모를 작은 복숭아 모양 찻잔 한쌍이 눈길을 끈다. “일행 모두가 꽃비(花雨)에 젖었다”(『난중일기』 1592년 2월 23일) 같은 시적 문장을 즐겨썼던 장군의 서정이 둘레 24㎝, 높이 2.4㎝의 찻잔 한쌍에 배어나는 듯하다. 이순신 종가에서 보관돼 온 유품으로 명나라 장수의 선물로 추정된다.

충무공의 행적과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는 게 다소 버거울 수 있는 기획이지만, 실감영상 등을 활용해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서윤희 연구관은 “이순신 종가는 물론, 일본 다이묘 유물도 쉽게 빌릴 수 없는 걸 수년간 공들여 성사시킨 기적 같은 전시”라면서 “광복 80주년을 보내면서 각자 내면의 이순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인 5000원, 어린이·청소년 3000원. 12월 4일(목)까지는 무료 관람할 수 있으며, 충무공 서거일인 12월 16일(화)도 무료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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